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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100m달리기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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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베이징 올림픽 때까지만 해도 100m달리기의 인간 한계를 9초44로 봤다. 100m를 구간별로 10m씩 나눠 가장 좋은 기록을 취합한 결과다. 출발 후 10m까지는 미국의 킴 콜린스, 20~50m구간은 모리스 그린, 나머지 5개 구간은 우사인 볼트의 기록을 더했다. 하지만 1년 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볼트가 9초58의 세계기록을 세우자 상황이 바뀌었다. 구간별 최고 기록을 조합했더니 그 한계가 9초35로 내려갔다.

    지금은 100m 기록이 더 단축될 수 있다고들 예상한다. 볼트의 세계기록에 ‘개선’ 가능한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 볼트는 총성이 울리고 0.146초 만에 몸을 움직였다. 출발이 가장 빨랐던 리처드 톰슨(0.119초)에 비해 0.027초 느린 기록이다. 뒤집어 보면 그만큼 당길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론적으로 가능한 출발반응시간은 0.1초다. 청각신호가 뇌에 도달하는 시간 0.08초와 뇌가 판단해서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시간을 합하면 0.1초가 걸린다는 뜻이다. 그래서 0.1초 이내에 출발하면 부정으로 간주한다. 정상급 선수들의 출발반응시간은 0.120~0.140초 정도다.

    볼트가 기록을 세운 베이징이나 베를린의 해발고도가 해수면과 비슷할 만큼 낮다는 점도 고려할 대상으로 꼽힌다. 육상대회 해발고도 상한선인 1000m에서 뛴다면 0.06초 안팎 단축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새로운 육상 트랙이나 초경량 러닝화 개발 등도 기록 단축 요인이다. 러닝화를 1온스(28.35g) 가볍게 하면 1마일(1.6㎞)을 뛸 때 24.75㎏의 무게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퍼펙션 포인트》라는 책을 낸 존 브렌커스는 이런저런 요인을 감안해 100m 달리기 인간한계를 8초99로 본다. 구간별 최고기록에서 미흡한 부분들을 개선하고 볼트보다 단거리에 더 적합한 몸을 가진 선수가 등장하면 9초 벽을 깰 수 있다는 주장이다.

    런던올림픽 남자 100m달리기에서 볼트가 9초63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세계기록에는 못 미쳤지만 베이징 올림픽 당시 수립한 올림픽 기록 9초69를 0.06초 단축한 성적이다. 출발 반응시간은 0.165초. 함께 뛴 블레이크와 게이틀린보다는 빨랐으나 타이슨 게이의 0.145초에 비해서는 느려 여전히 개선의 여지를 남겼다.

    100m 달리기는 가장 원초적이고 정직한 스포츠다. 아무 군더더기 없이 직선을 내닫는 능력을 겨룬다는 점에서다. 원시시대 생존을 위해 동물을 사냥할 때의 질주 본능과 연관돼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사냥은 하지 않지만 ‘가장 빠른 인간’에 열광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다는 게 흥미롭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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