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과학자들이 이미 안전하다고 평가를 내린 고리 원전에 대한 재가동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원전의 재가동 결정에 꼭 필요한 것도 아닌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점검까지 받아가며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반대론자들에겐 여전히 의구심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신용을 잃은 출발점은 한국수력원자력이다. 전원공급이 끊겼던 상황을 즉각 보고하지 않은 점, 내부 비리가 드러난 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경영혁신을 통해 부패행위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원전고장 시 지휘계통으로 즉각 보고하는 절차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원자로가 안전한가에 대한 판단은 이 문제와는 별도다. 원자력안전기술원의 박사급 과학자들 100여명이 투입돼 18개월 동안 점검을 벌여 안전하다고 판단 내린 원자로를 기술적 불안을 거론하며 재가동을 반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우리는 미국으로 비행기를 타고 갈 때 1만m 상공을 10여시간 날아간다. 항공기 정비사들의 안전 점검을 믿기 때문에 타고 가는 것이다. 그 과학적, 기술적 믿음이 없으면 낙하산 하나도 비치돼 있지 않은 여객기를 탈 수 없는 것이다. 과학의 분야는 과학자들에게 맡겨서 그 결과가 ‘안전하다’고 평가되면 믿고 따라주어야 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민심이 흉흉해진 일본으로부터 요미우리의 전 논설위원 나카무라 마사오 씨를 초청해 일본의 전력사정과 원자력 이야기를 들었다. 2011년 3월11일 이후 2012년 4월까지 총 54기의 원전을 가동 중지시킨 일본의 전력 구성비는 석유와 천연가스, 석탄 의존율이 91.8%로 전력생산을 화석연료로 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원자력을 중지시키고 석유와 천연가스를 추가 도입하는 데 들어간 돈이 무려 47조원. 경제대국 일본이기에 쓸 돈이 있어서 가능했겠지만 올해는 더 많은 돈이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석탄발전은 변동이 없었는데 이산화탄소 배출에 부담이 커서 늘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지진 이후에 3~4일에 한 번꼴로 체감지진이 발생한다는 일본이지만 땅이 흔들려도 원자력 발전소를 재가동시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국가의 흥망성쇠가 달렸기 때문이라는 게 결론이다. 부존자원이 없는 일본에서 전력생산의 원료를 석유와 천연가스에 의존하면 그만큼 에너지 자원 수입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 비용은 당연히 제품의 생산원가에 반영돼야 하니 공장은 계속적으로 해외로 떠나가고 고용은 줄어들어 원자력 발전을 중단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지진에 원자로의 안전은 어떠한가를 물었더니 원자로의 안전성에는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지진이 거의 없는 한국은 태생적 고민이 덜한 편이다. 올해 7월 현재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원자력 발전소는 30개국에서 435기에 달하고 62기가 추가 건설되고 있다. 고리 1호기처럼 30년 이상 가동되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는 178기로 전체 가동원전의 41%이고 40년 이상 운전 중인 것도 32기나 된다. 기술적으로 안전하다고 결과가 나오면 가동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한국은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자로를 수출한 나라다. 한국만의 원자력이 아니라 세계의 원자력이 되고 있다. 한국 내에서 원자력이 인정받지 못하고 갈등이 심화되면 원자로를 수출하기 어렵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사업주는 철저한 안전점검과 부패, 비리가 없는 원자력 풍토를 만들어 내야 하고 지역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복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의 지혜로운 정책수립도 절실히 요구된다. 그리고 큰 시각에서 지역주민들은 과학자들의 안전점검을 수용해 줘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핀란드 등 한국의 원자력이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원자력 산업이 후세의 먹거리 산업이 될 수 있도록 상생의 원자력이 돼야 한다.

김경민 < 한양대 교수·국제정치 kmkim@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