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당국이 시중은행들에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SOHO) 신규 대출을 늘리도록 주문했다. 장기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는 가운데 은행들이 위험 관리 차원에서 대출을 축소하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줄도산 사태가 일어나 경제 전체가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3일 시중은행들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각각 지난달 중순 시중은행 관계자들과의 회의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대출을 조금 더 늘리라”고 요구했다. A은행 관계자는 “특히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 대상 신규 대출을 늘려달라는 주문이 있었고, 가계대출도 만기 연장을 원활히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전했다.

B은행 관계자도 “작년까지만 해도 금융감독당국은 은행의 건전성과 가계부채 문제를 최우선 정책과제로 삼았는데 최근 들어 오히려 대출을 어느 정도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양현근 금감원 국장은 “대출을 늘리라고 직접적인 요구를 했던 것은 아니지만 과도한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취지는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금융감독당국이 중소기업 신규 대출을 늘리도록 요청한 것은 중소기업 대출 규모가 2분기 들어 감소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국내 은행의 기업 대출은 1분기에는 3조8000억원 증가했지만 지난 4월엔 3000억원, 5월엔 2000억원 각각 감소했다.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작년 말 중소기업 대출 평균 연체율은 1.34%였는데 5월 말에는 1.95%로 급등했다.

금융당국은 자영업자 대출 비중이 높은 개인사업자 대출과 관련해서는 좀 더 정교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개인사업자 대출은 중소기업 대출과 달리 줄어들지는 않았다.

은행들은 일단 ‘신규 대출을 늘리라’는 금융감독당국의 요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이 리스크 관리보다 대출을 늘리라고 요구하면 상대적으로 영업이 활발해질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일부 은행들은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적극적인 대출영업이 어려울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D은행 관계자는 “조선 건설 철강 등 부진한 업종이 많은 데다 불황이 지속되고 있어 은행으로서는 돈을 떼일 가능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정책적으로 대출을 늘려달라는 요청을 받더라도 무작정 늘릴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