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기상황에 대한 비관적인 소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6월 산업동향에서는 생산, 소비, 투자가 모두 마이너스 증가율을 보였다. 수출 증가율 역시 몇 달째 마이너스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은행이 올해 성장률 전망을 3%로 낮추었으나 이보다 낮아질 가능성도 대두된다. 이에 따라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경기부양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이미 6월 말 재정확대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기금과 공기업의 지출을 4조원 늘리고 재정집행을 4조5000억원 확대한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추경의 규모가 기껏해야 5조~6조원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8조5000억원은 상당한 규모라 할 수 있다. 또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계획된 사업들을 확대하겠다는 것이어서 시차문제(time-lag)도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 계획이 연내 모두 실행될지는 불확실하지만, 정부로서는 최선의 대안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여기에 더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 할지 여부다. 추경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거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회복기에나 추경 효과 나타나…물가불안·경기과열 부를수도

첫째, 정책시차로 인해 올해 안에 추경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정부가 추경안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하면 국회가 이를 심의해 추경을 결정하고, 그것이 일선에서 집행되기까지 긴 시간이 소요된다. 당장 추경편성 작업을 시작한다 해도 올해 안에 집행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더구나 하반기에는 경기가 저점을 찍을 전망이어서, 지금 추경을 편성할 경우 그 효과가 경기회복 국면에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자칫 물가불안이나 경기과열을 낳을 수도 있다.

둘째, 현재로서는 ‘국가재정법’ 상의 추경편성요건을 만족시키기 어려워 보인다. 이 법에 의하면 경기침체, 대량실업 등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만 추경을 편성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4% 내외라고 할 때, 3% 내외의 성장을 심각한 경기침체가 부르기는 어렵다. 또 현재로서는 대량실업이 발생할 가능성도 낮다.

셋째, 추경이 재정규율을 무너뜨릴 가능성도 있다. 대선국면에서 복지 분야를 중심으로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이런 주장에 편승해 불필요한 사업을 추경에 끼워넣을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특히 외국 신용평가기관이 우리 경제의 불안요인으로 공기업 부채와 가계 부채를 지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부채 증가는 최대한 막아야 한다.

넷째, 재정정책은 경기 하강국면과 회복국면에 대칭적으로 운용돼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하강국면에는 재정을 마음껏 풀었다가, 회복국면에는 그만큼 조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외국에서도 이런 비대칭성이 목격되는데, 비대칭적 재정운용이 반복되면 정부 부채가 계속 늘어나게 된다. 우리나라는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때 대규모 부양정책을 실시했으며, 그 결과 경기조절에는 기여했다. 그러나 정부 부채가 늘어나 작년 말에는 부채비율이 34%에 달했다. 만일 올해 하반기에 경기회복이 시작된다면, 부채비율을 위기 이전의 수준인 30%로 조속히 되돌리기 위해 다소 무리해서라도 재정을 줄여나가야 한다.

다섯째, 경기불황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지금 선진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부채감축(de-leveraging)이 완료되기까지는 몇 년이 걸릴 전망이고, 그 여파로 우리도 오랫동안 경기가 지지부진할 가능성이 있다. 또 인구증가율 둔화 등 여러 이유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4% 아래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경우에 부양정책은 별 효과를 낳지 못하고 정부 부채만 대폭 증가시킨다.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많은 선진국이 그러했고, 1990년대 이후 일본이 그러했다. 우리도 이런 가능성에 대비해 경기부양보다는 재정건전화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재정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올해 추경을 편성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현재보다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면 추경을 고려할 수는 있을 것이다. 예컨대 하반기에도 경기하강이 이어져서 성장률 전망치가 2% 내외로 내려앉고 경기저점이 내년으로 미뤄진다면 하반기에 추경을 편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거시경제 전문가들 가운데 이처럼 비관적인 견해를 갖는 사람은 많지 않다. 좀 더 시간을 두고 경기상황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불황 장기화도 염두에 둬야…거시정책 수시 전환은 곤란

경기가 하반기에 저점을 찍더라도 이후의 회복세는 그리 강할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빠르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당초 내년에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어 가능한 한 이를 지키려는 입장이다. 이는 국민들에게 신뢰를 확보하고, 대외적으로도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필요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회복세가 미약하다면 내년에 균형재정을 반드시 달성해야 할 필요성은 크지 않다.

현실적으로도 균형재정 달성이 쉽지 않아 보인다. 당초 인천공항 등의 정부지분 매각으로 세외수입을 확보할 계획이었으나, 현재로서는 이 계획이 실현될지 불확실하다.

이렇게 예상보다 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균형재정을 달성하려면 지출을 줄여야 한다. 그러나 내년에도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에 발표된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내년 총지출 증가율은 4.9%다. 이것은 명목증가율인데, 물가상승을 감안한 실질증가율은 2~3%에 불과하다. 이보다 더 낮추는 것은 경기대응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내년에는 재정건전성 강화에 방점을 둔 현재의 재정정책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균형재정 달성시점은 다소 늦출 필요가 있다. 내년 재정지출은 국가재정운용계획 상의 규모(총지출 기준 342조원)에서 억제하되, 수입 측면에서 부족분이 발생하면 국채 발행으로 충당하는 것이다. 물론 경기가 급락하는 경우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여지는 남겨두어야 한다.

이처럼 경기상황에 대응한 거시경제정책을 논의함에 있어 주의할 점은 단기 과제와 중장기 과제, 그리고 거시정책수단과 미시정책수단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단기적 경기조절은 일차적으로 거시정책수단, 즉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몫이다. 반면 미시경제정책, 예컨대 주택정책, 조세정책, 공정거래정책, 중소기업정책 등은 중장기적 시각에서 뚜렷한 방향성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 물론 부분적으로 미시정책수단을 활용할 수는 있으나, 정책의 큰 방향을 경기국면마다 바꾸는 것은 후진적인 정책운용이다.

고영선 < KDI 연구본부장 >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경제학 박사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