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 궁사' 기보배, 슛오프 끝에 극적 우승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녀 궁사’ 기보배(24)가 영화 ‘최종병기 활’의 대사처럼 변화무쌍한 바람을 뚫고 화살을 금빛 과녁에 명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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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보배는 3일(한국시간) 런던의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열린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멕시코의 아이다 로만을 슛오프(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종합점수 6-5의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기보배는 양궁 여자 단체전에서 중국을 1점 차로 누르고 금메달을 따낸 데 이어 한국 선수단 가운데 첫 2관왕에 올랐다. 한국 선수단의 7번째 금메달이자 역대 올림픽 양궁 18번째 금메달.

결승전이 열린 이날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에는 바람이 수시로 변화하며 승부의 가장 큰 변수로 떠올랐다. 바람의 방향은 계속 바뀌었고 속도도 초속 1.4~4m를 오갔다. 바람을 읽지 못하면 큰 실수를 할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보배는 침착하게 실수를 줄여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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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보배는 경기 초반 1세트를 가져가며 기선을 제압했지만 이후엔 팽팽한 승부가 이어졌다. 2세트는 동점, 3세트는 로만이 챙겼다. 4세트는 기보배의 승, 5세트는 로만의 승리로 끝났다.

승부는 슛오프에서 갈렸다. 슛오프는 두 선수가 화살 한 발을 쏴서 둘 중 과녁의 중심에 더 가깝게 쏜 사람이 우승하는 제도다. 기보배가 먼저 사대에 들어섰다. 극도로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 바람은 여전히 변화무쌍했다. 심호흡을 하고 날린 화살은 70m를 날아 과녁에 꽂혔다. 하지만 노란색이 아닌 빨간색. 9점 라인에 조금 못 미친 8점이었다. 금메달이 날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로만이 활시위를 당긴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화살은 8점 영역에서도 7점에 가까운 쪽에 꽂혔다. 기보배의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기보배는 시상식을 마친 뒤 인터뷰에서 “열심히 훈련한 결과가 금메달로 이어져 기쁘다”면서 “국민의 부담을 안고 우승을 거뒀다”고 울먹였다. 기보배는 메달을 따지 못한 팀 선배 최현주 이성진에 대해 “같이 고생하면서 훈련했는데 혼자 금메달을 따내 미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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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보배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의 박성현 이후 8년 만에 여자 개인전 금메달을 한국 양궁 선수단에 안겼다. 세계 최강으로 불리는 한국 여자 양궁은 1984년 LA올림픽 서향순을 시작으로 1988년 서울올림픽의 김수녕,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의 조윤정,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의 김경옥, 2000년 시드니올림픽의 윤미진, 2004년 아테네올림픽의 박성현까지 6연속 개인전 금메달이라는 대 위업을 달성했다.

하지만 4년 전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중국에 금메달을 넘겨주며 이번 대회 절치부심했고 기보배가 대회 2관왕에 오르며 다시 한국 양궁이 세계 최강임을 증명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