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불황의 그림자…도곡동 주유소 '1원 전쟁'
서울 도곡동 매봉역 일대. 고가 아파트들이 몰려 있는 이곳에 ‘주유소 1원 전쟁’이 한창이다. 지난달 29일 한진도곡주유소는 보통휘발유 가격을 1888원으로 내걸었다. 그러자 이틀 후 800m가량 떨어진 오일씨티주유소는 1887원 가격표를 붙였다. 다음날인 지난 1일 1.7㎞ 거리의 개나리주유소가 1886원으로 내렸고, 이에 뒤질세라 2일 오일씨티주유소도 다시 1원을 낮췄다.

강남의 대표적인 부촌에 하룻밤 새 1원 차이로 최저가 주유소가 뒤바뀌는 치열한 휘발유 가격전이 전개되고 있다. 고가 수입차들이 많이 굴러다니는 이곳에서도 불황의 여파로 단돈 1원의 기름값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매봉역 일대 주유소 가격전은 현대오일뱅크 폴사인을 단 오일씨티주유소가 올초 셀프주유소로 변신하면서 촉발됐다. 이 주유소는 지난해만 해도 2300원이 넘는 가격으로 여의도 경일주유소와 함께 전국에서 가장 비싼 주유소 중 하나로 꼽히던 곳이다.

그러나 셀프주유소로 전환한 이후에는 지난 4월 서울 휘발유 가격이 사상 최고치인 평균 2100원을 넘어갈 때도 서울에서 유일하게 1999원을 유지했다. 이 주유소를 뒤따라 매봉주유소 등이 셀프 방식으로 바뀌었다.

땅값이 비싼 강남 지역에서 요즘 1880원대 주유소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기름값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선 탓에 이날 서울 평균 휘발유가는 ℓ당 2012원을 넘어섰다. 강남구 평균 가격은 이보다 100원 이상 비싼 2127원이다. 특히 강남구 최고가 주유소(2335원)와 오일씨티주유소의 가격(1886원)을 비교하면 60ℓ 연료탱크를 가득 채울 경우 2만7000원 가까이 차이가 난다.

이 같은 가격 메리트 때문에 이곳은 인근 주민은 물론 출퇴근길 동작, 서초, 분당 등지에서 오는 고객들로 붐빈다. 박은성 개나리주유소 상무는 “요즘은 오피넷(유가정보사이트)에 뜬 가격을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다”며 “강남이라는 특수성이 있다고 해도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고객들이 몇십원 차이에도 차를 돌리는 상황이니 박리다매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일씨티주유소 관계자는 “셀프 전환 전과 단순 비교하면 ℓ당 300원 정도 싸졌다”며 “과거에는 서비스를 내세웠지만 이제는 강남이라도 고마진 주유소는 더 이상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