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의 명수' 김지연 … 女 펜싱 사상 첫 金
“그동안 역전하기보다 역전당하는 경우가 더 많았는데 1등은 처음이에요. 원래는 쉽게 포기하는 편인데 오늘은 정말 포기하기 싫었어요.”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 결승전에서 세계랭킹 2위 소피야 벨리카야(러시아)를 15-9로 꺾고 한국 여자 펜싱 사상 첫 금메달을 딴 김지연(24·익산시청)은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라며 기뻐했다. 세계랭킹 1위 마리엘 자구니스(미국)와의 준결승에서 3-9로 뒤지던 경기를 15-13으로 뒤집어낸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고백’이다. 그는 8강전에서도 바실리키 보우기우카(그리스)에게 3-8로 뒤지다 15-12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세계 1, 2위 연거푸 꺾고 우승

김지연의 금빛 행진에서 최대 고비는 준결승이었다.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에도 울지 않았던 김지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럴 만했다.

자구니스는 2004년 아테네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평정한 데다 지난해 3월 모스크바국제그랑프리 준결승에서도 김지연에게 역전패의 아픔을 안긴 장본인. 그를 꺾은 후 김지연은 “3-4위전으로 밀리기 싫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제발 이기자’고 마음을 다잡으며 집중한 결과 5-12로 뒤지던 경기를 15-13으로 따내는 기적의 역전승을 거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랭킹 65위 불과

김지연의 금메달을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표팀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어린 데다 국가대표로 발탁된 지 1년 남짓한 신예에게 큰 기대를 걸기는 무리였다. 태극마크를 단 것도 김용율 총감독의 추천 덕분이었다.
지난해 국가대표 선발전 16강에서 탈락한 김지연의 투지와 빠른발을 본 김 감독의 눈에 들어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만년 후보’에만 머무르던 김지연에게는 하늘이 내린 기회이기도 했다.

지난해 그의 세계랭킹은 65위에 불과했다. 하지만 “펜싱은 나의 전부”라는 악착 같은 투지로 국제대회에서 2~3위를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피나는 노력 끝에 이번 올림픽에서는 여자 최초로 한국 펜싱에 금메달을 안기는 선수가 됐다.

◆빠른 발 역공 뛰어난 ‘발바리’

김지연의 별명은 ‘발바리’다. 전광석화처럼 상대에게 접근해 순식간에 베어버리는 경기력은 그의 발에서 나온다. 그는 “수비에 자신이 있는 편이라 상대의 공격을 막아낸 후 빠른 발로 역습하는 전술을 주로 쓴다”고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플뢰레로 펜싱에 입문했던 그는 부산디자인고교로 진학하면서 사브르로 종목을 바꿨다. 그의 체격은 165㎝에 57㎏. 사브르 선수치곤 작은 편이지만 “칼을 잡고 있으면 자꾸 휘두르고 싶어진다”는 그의 투지에 더 맞는 종목이다. 잇단 오심 사태를 의식한 듯 그는 “오심의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아 더욱 열심히 경기했다”고 덧붙였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