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4년이 다 돼 가지만 세계 경제는 회복될 조짐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유로존 위기가 덮치면서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1일 ‘내수 활성화를 위한 민관합동 집중토론회’를 직접 주재했지만 별 뾰족한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사실 한국 단독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세계 경제에 불황의 골이 깊어지는 데에는 그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있을진대 그 원인 진단이 부실한 마당에 적절한 해결책이 나올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와 관련해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경제학자들이 여러 차례 제시한 바 있지만 일본과 미국 경제를 바탕으로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일본과 미국 경제가 밟고 있는 경로는 참으로 똑같다.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고에 따른 수출 부문의 타격을 내수 진작으로 해결하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폈다. 1985년 말까지 5%이던 할인율을 1986년 1월부터 낮추기 시작해서 1987년 2월에는 2.5%로 낮춰 1989년 4월까지 유지했다. 많은 돈이 풀려 나갔고 부동산과 주식시장이 과열됐다. 거품이 형성된 것이다. 이후 1989년 5월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이자율을 올리기 시작해서 1990년 8월에는 6%로 복귀, 1991년 6월까지 유지했다. 그러자 거품이 터지면서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에 대한 정책은 재정 투입과 통화 공급을 늘리는 것이었다.

미국은 2000년 말까지 6.5%이던 연방기금 금리(타깃 금리)를 2001년 초부터 낮추기 시작해서 12월 1.75%, 2002년 11월 1.25%, 2003년 6월에는 1%로 낮춰 2004년 5월까지 유지했다.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2006년 6월까지 5.25%로 올린 후 2007년 8월까지 유지했다. 그러자 그동안 형성됐던 주택 가격의 거품이 터지면서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경제는 심각한 침체 국면에 들어섰다. 이에 따른 정책은 재정 투입과 통화 공급을 늘리는 것이었다. 두 나라의 기준금리 움직임, 거품 형성과 붕괴, 그리고 정책 처방이 똑같다.

잦은 경기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 모두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도 꼭 같다. 일본은 거품이 터진 1991년 이후 20년 넘게 침체 국면에서 허덕이고 있고 미국 역시 금융위기 이후 4년이 지났지만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 1, 3위 경제 대국의 혼란에 설상가상으로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 위기가 겹치면서 지금 세계 경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마냥 표류하고 있다.

현재 경제 운용의 이론적 배경이 되고 있는 케인스 경제학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거품 형성과 붕괴의 원인, 이후의 경기 침체에 대응한 부양책이 어떻게 경제를 살릴 수 있는지 분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폴 크루그먼은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더욱 강한 경기부양 정책을 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과 미국은 그동안 재정 확대, 저금리 통화정책, 양적완화 등을 통해 갖가지 부양 정책을 실시한 바 있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이는 곧 정확한 진단 없는 경기 부양책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지금의 일본과 미국 경제는 중앙은행의 금리 조작에서 비롯된 붐-버스트 사이클을 보여주는 전형이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붐 기간에 쌓였던 불순물을 제거하는 시장 과정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갑자기 많이 풀린 통화로 생긴 자금을 저축이 증가한 결과로 오인해 이뤄졌던 과오 투자, 즉 소비자 선호와 맞지 않게 형성된 생산구조가 시장에 의해 재정비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금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만들고 이를 지속시키고 있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개인들도 아니고 이들이 활동하는 시장도 아니다. 케인스 경제학을 금과옥조처럼 믿고 있는 거시경제학이 문제다.

학해무변(學海無邊)이라고 했다. 케인시안 패러다임에만 사로잡힌 폐쇄적 사고에서 벗어나 금리 조작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장기간 침체 국면을 헤매고 있는 세계 경제는 결코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