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실적 최대지만 지금이 진짜 위기"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이 위기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삼성전자가 최대 실적을 내고 있지만 “지금이 진짜 위기”라며 임직원들에게 긴장할 것을 주문했다. 지난달 삼성전자 대표이사를 맡은 뒤 처음으로 전체 간부들을 모아 위기의식부터 강조한 것은 그만큼 기업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뜻으로 업계는 받아들이고 있다.

권 부회장은 최근 경기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부품(DS) 부문 ‘3분기 경영 현안 설명회’에 참석한 600여명의 부장급 이상 임직원에게 “현 시점이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려운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외환위기 당시에는 우리나라와 일부 아시아 국가만 힘들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다 어렵다”며 “유럽 재정위기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중국을 비롯한 신흥 시장마저 침체국면으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위기가 언제 끝날 지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거시 경제 여건뿐 아니라 승자 독식 체제로 재편된 정보기술(IT) 업계 판도도 위기 요인으로 꼽혔다. 권 부회장은 “수년 전까지만 해도 IT 업계에는 완제품 회사가 많아 반도체나 LCD(액정표시장치)를 파는 삼성전자가 협상력을 가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는 “스마트폰이 대부분의 IT기기를 대체하면서 거래처가 소수화됐다”며 “이 때문에 완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이 부품 회사를 마음대로 선택하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삼성전자조차 애플에 납품하는 비중이 늘면서 애플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거론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삼성전자가 애플에 납품하는 거래액은 2010년 6조원에서 지난해 10조원가량으로 증가했으며, 올해는 16조원 이상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권 부회장은 “대세는 거스를 수 없다”며 위기 극복 방안으로 정공법을 택했다. 그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거래선의 소수화는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니다”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위기를 이겨나가자”고 독려했다.

최우선 과제로 ‘부품 경쟁력’을 들었다. 권 부회장은 “우리가 고객들에게 부품을 사달라고 하기 전에 고객들이 삼성 부품을 사고 싶어할 정도로 만들어야 한다”며 “삼성 부품이라면 누구든 믿을 수 있도록 경쟁업체들과 비교해 압도적인 기술 격차를 내달라”고 주문했다.

‘워크 스마트(work smart)’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최근에 위기라는 이유로 출근 시간이 당겨지고 퇴근이 늦어지고 있어 ‘워크 스마트가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절대 그럴 일은 없다”고 못 박았다. “위기일수록 직원들의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며 “업무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워크 스마트는 시대적 흐름이며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가치”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권 부회장은 최근 임직원들에게 “각자 여건에 맞게 업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정하라”며 본인부터 자율 출퇴근을 실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09년부터 오전 6시~오후 1시에 출근해 9시간(점심시간 포함) 근무하고 퇴근하는 자율출퇴근제를 실시하고 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