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스펙' 쌓는 4학년, 오디션에 미쳐 있었죠
2011년 7월 꼭 1년 전 이맘때였다. 만 26세 나이에 신인가수 발굴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도전은 시작부터 험로였다. ‘너 정도의 노래실력을 가진 사람은 아마도 수백만명은 될 걸….’ 친구들에게서 돌아온 건 격려 대신 코웃음. 주변의 만류에도 기어코 원서를 냈다. 비록 공학도였지만 자신의 재능을 검증받고 싶었다. SM·JYP 등 엔터테인먼트사로부터 나이가 많다고 이미 퇴짜를 맞은 적이 있기에 기회를 살리고 싶었다. 한 학기 휴학계를 낼 만큼 열정을 쏟았다. 대학 4학년. 남들은 취업을 위해 어학원을 다니고 한 줄의 스펙을 위해 공모전을 준비하는 데 바빴지만 연습실에서 목이 쉬어라 부르고 또 불렀다. “그때 하지 않았다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어요.” 드디어 예선대회날. 어린 10대와 20대 초반의 동생들과 노래대결을 펼쳤다. 곡명은 이브의 ‘I’ll be there’. 너무 긴장했던 탓일까…연습 때만큼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과는 탈락.

하지만 거기서 주저앉지 않았다. 오직 목소리로 승부해 슈퍼보컬을 뽑는 ‘Voice Korea’프로그램에 또 도전. 쟁쟁한 예비가수들은 실력에서 한 수 위였다. 자신보다 나이는 비록 어렸지만 온맘을 다해 열창하는 이들을 보면서 프로의 자세를 배웠다. 비록 두 번의 오디션에서 모두 떨어졌지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최선을 다해 도전하는 삶이 아름답다.”

한화케미칼 상반기 공채로 입사, 한창 신입사원 연수 중인 김용수 씨(27·고려대 화공생명과 졸)를 지난 금요일 서울 장교동 한화빌딩 17층에서 만났다. 경기도 가평 한화 인재경영원에서 막 연수를 끝내고 보름간의 본사연수를 받는 중이란다. 김씨의 정식발령일은 8월16일. 여름 휴가도 없이 2012년 뜨거운 여름을 보내야 하지만 김씨는 마냥 즐거운 표정이었다. “여수공장이든 울산공장이든 빨리 가서 새로운 일을 배워보고 싶어요. 거기에 또 다른 도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벌써부터 설렙니다.”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청년’ 김씨의 대학시절과 합격 후 연수이야기를 들어봤다.

◆“노래는 내 삶의 나침반”

남들 '스펙' 쌓는 4학년, 오디션에 미쳐 있었죠
성당을 다니면서 성가곡을 배웠다. 어렸지만 남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좋았다. 노래를 부를 땐 한없이 행복했다. 마침내 원하던 대학에 입학,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맘껏 불러보고 싶어 중학교 친구 4명과 함께 밴드를 조직했다. 노래를 좋아하고 즐기는 이들이 모였기에 언젠가는 ‘톱(Top)’에 오를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이름도 ‘탑밴드’로 지었다. “홍대 근처에 연습실을 마련했어요. 여름엔 에어컨도 없이 땀을 뻘뻘 흘려가며, 겨울엔 난방기도 없이 추웠지만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웃으며 노래했죠.” 대학 2학년. 한번은 공연 도중 전기가 나가는 일이 생겼다. 순간 지하의 공연장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깜깜해졌지만 5인조 탑밴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주어진 노래를 불렀다. 마지막 곡이 끝났을 무렵 어둠 속에서도 자리를 지켰던 관객들은 약속이나 한듯 모두 일어났다. 그리고 기립박수로 그들의 열창에 화답했다.

그의 도전은 호주 어학연수에서도 계속됐다. 달랑 100달러를 들고 호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물 두 통을 사고 방을 잡으니 돈이 동났어요.” 궁하면 통한다

했던가. 시드니에 도착하자마자 돈을 벌기 위해 일자리를 찾았다. 운좋게 청소업체를 찾아 하루 8시간씩 일하면서 영어도 익혔다.

하지만 정작 그를 사로잡은 건 스카이다이빙. 그는 청소로 번 돈을 스카이다이빙을 배우는 데 모두 쏟아부을 정도로 매력을 느꼈다. “처음엔 무서웠지만 ‘다른 사람도 하는데 뭐’하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1만4000피트(feet) 창공을 날면서 느끼는 그 희열이란… 내친김에 자격증도 땄다. 이런 경험은 나중에 임원면접에서 먹혔다. 한화의 ‘실패를 두려워 않는 불굴의 도전정신’과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함께했던 정현동 인력운영팀 매니저는 “김용수 씨는 부족해도 끊임없이 연습하며 도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것이 한화의 인재상과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사랑받는 후배 될 것”

잇따라 오디션에서 떨어지자 김씨는 비로소 자신의 전공인 화공학에 집중할 수 있었다. 비록 떨어졌지만 도전했기에 미련은 없었다. 이 같은 경험을 통해 배운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일단 뭐든지 해봐…어쩌면 안 될 수도 있지만 나중에 못했다고 후회는 안 할 거야.” 단순히 스펙 쌓기보다는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에 한번 도전해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미리 짓지 말고 그냥 무모하게 도전해 보면 나중에 그 경험을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려대를 나왔지만 밴드활동을 하느라 내세울 스펙이 없었던 김씨는 취업문 앞에서 잇단 고배를 마셨다. 인·적성검사는 물론 심지어 서류전형 통과도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올 상반기 한화 채용사이트인 ‘넷크루트’에 뜬 자신의 이름을 보고 외친 첫마디는 ‘아~ 이젠 살았다’라는 감사의 고백이었다. “한화케미칼 입사는 내 인생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해요. 이 기회를 정말 잘 살리고 싶어요.”

아직 연수 중인 그에게 어떤 한화맨이 돼 기회를 살리고 싶냐고 묻자 그는 소박하지만 기본을 이야기했다. “크게는 회사의 태양광사업이 잘 되도록 이바지하고 싶어요. 지금은 업무에 빨리 적응해 사랑받는 후배가 되고 싶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온종일 40㎞를 걷는 산행, 새벽 2시가 되어서야 통과된 사가(社歌)심사의 추억, ‘출근시간을 엄수하고 자신의 외모를 단정히 하는 직장인이 돼라’는 선배의 충고…. “19박20일의 연수원에서의 기억은 한화맨으로 생활하면서 영원히 못 잊을 것 같아요”라면서 마무리 멘트로 그가 남긴 한마디에 모두의 귀가 솔깃해졌다. “근데, 가평 인재경영원의 밥은 왜 그리 맛이 좋던지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았어요. 하하하.”

함께 동행한 취업준비생 2명도 올가을엔 가평 한화 연수원의 ‘그 밥’을 꼭 먹어보고 싶단다. 여전히 ‘배고픈 청년’ 김용수 씨가 쏟아낼 한화케미칼에서의 새로운 도전은 뭘까 기대가 된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