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오 오죤필름 대표 "5전6기 '연가시'…충무로 생활 18년 만에 돈 버네요"
“충무로에 나온 지 18년 만에 처음으로 영화로 돈을 벌게 됐습니다. 앞선 여러 작품들이 실패했어도 꾸준히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제작비를 한 번도 초과한 적이 없어서였죠.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지 않았던 게 밑거름이 됐습니다.”

김상오 오죤필름 대표 "5전6기 '연가시'…충무로 생활 18년 만에 돈 버네요"
재난영화 ‘연가시’를 제작한 김상오 오죤필름 대표(43·사진)는 흥분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지난 5일 개봉한 ‘연가시’는 27일 현재 433만명을 모아 155억원을 벌어들였다. 총제작비 65억원을 뺀 순익은 90억원. 김 대표는 투자배급사 몫을 빼고 30억~40억원을 거머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가시는 곤충을 숙주로 이용하는 기생충이에요. 어른들은 잘 몰라도 10대들은 다 압니다. 몇 년 전 인터넷 검색어 순위 상단을 달궜거든요. 20~30대 주류 관객 외에도 10대와 부모 세대인 40~50대가 함께 즐기는 가족영화가 됐습니다.”

아이들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연가시의 공포를 느끼기 위해 극장을 찾았고, 아이들과 함께 온 아버지들은 가장의 권위를 회복하는 이야기에 매료됐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극중 연가시의 징그러운 장면들을 최소화했다. 너무 흉하면 가족 관객들이 발길을 돌릴 것으로 판단해서다.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욕설도 모두 뺐다.

“10대 영화시장이 정말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10대 예매율이 ‘스파이더맨’보다 높았어요. 심지어 너댓 번을 본 아이들도 있더군요. 파트너를 바꿔가며 영화를 보는 거죠.”

이 영화는 원래 제작비를 20억원 더 투입하는 대작으로 기획됐다. 그러나 투자사인 CJ엔터테인먼트가 제작비 축소를 원했다. 김 대표는 5억원이 소요되는 헬기로 환자를 구출하는 장면 등을 없앴다. 구급약을 호송하는 차량 신은 간접광고 명목으로 기업 협찬을 받았다.

“대본을 쓴 박정우 감독에게 가능한 한 신을 축소해 비용을 줄이도록 했어요. 덕분에 재난영화인데도 일반영화 정도의 비용만 들이게 됐습니다. 흥행작 ‘주유소습격사건’ 등의 시나리오를 썼던 박정우 작가는 감독으로 데뷔해 두 차례 실패한 뒤 이 영화로 관객몰이에 성공했습니다.”

경성대 연극영화과를 나온 김 대표는 1994년 ‘영원한 제국’의 스태프로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2006년 오죤필름을 설립한 뒤 ‘미스터 소크라테스’ ‘스승의 은혜’ ‘내사랑’ ‘부산’ ‘심장이 뛴다’ 등 5편을 제작했지만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그러나 그 자체가 기록이다. 충무로에서 2~3편 실패한 제작자는 투자를 못 받기 때문이다.

“망하는데도 영화를 계속 찍으니까 주변에서 놀랍다고들 해요. 제작 관리는 믿을 만하다는 인상을 투자가들에게 심어줬기 때문이죠. 다섯 편을 제작하는 동안 예산을 초과한 적이 없어요. 제작비를 예산대로 맞추기 위해 촬영에 앞서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신을 순서대로 적어달라고 합니다. 비용이 초과할 것 같으면 중요도가 낮은 장면부터 없애는 거죠.”

또 모든 스태프는 제작사가 지정하도록 계약한다. 감독들이 때로 값비싼 스태프를 요구할 경우에는 능력은 비슷하지만 임금은 적게 줘도 되는 스태프를 선택한다.

“저는 1인 기업입니다. 직원이 없으니 실패한 동안 경상비도 덜 나갔죠. 기획료와 월세 50만원 정도의 사무실 비용만 지출했어요. 나머지 잡무는 저 혼자 처리했습니다.”

김 대표는 주로 신인 감독이나 실패를 경험한 감독들과 작업했다. 그들과 10여년간 알고 지내면서 속내를 훤히 꿰뚫을 정도가 됐다. 덕분에 현장에서 감독들과의 소통이 원활한 편이다.

“지난해 창업 5주년 기념식에 모인 지인들에게 5년간 손해만 끼쳤으니 앞으로 5년은 이익을 돌려주겠다고 말했어요. ‘연가시’가 그 약속을 지키게 해줬고, 앞으로도 계속 지켜나가도록 힘쓰겠습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