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한 구절 쓰면 한 구절을 와서 읽는 그대/그래서 이 편지는/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시인 김남조 씨(85)의 ‘편지’ 전문이다. 이 시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연모와 인생의 고독이 짙게 배어 있다. 원로 화가 김구림 씨는 이 작품을 단편소설 ‘소나기’의 주인공처럼 순수한 사랑을 품은 한 여인의 몸부림으로 형상화했다.

인기 화가 황주리 씨의 그림 ‘동행’은 젊은 시절 가슴 한편에 숨겨둔 추억과 낭만을 원색의 미감으로 살려냈고, 여기에 시인 고두현 씨는 사랑의 내면 풍경을 그린 시 ‘상생’으로 화답했다.

이들을 비롯해 황금찬 유안진 김후란 신달자 정호승 도종환 안도현 씨 등 쟁쟁한 시인 38명과 오승우 민경갑 여운 이두식 황영성 김춘옥 전래식 전준엽 김정수 씨 등 화가 100여명이 서울 인사동 갤러리 이즈(옛 화고재화랑)에서 오는 25일부터 31일까지 ‘대한민국 작은 그림 미술제’를 펼친다.

휴가철 ‘아트 바캉스’를 겨냥한 이번 행사에는 시인들의 친필 시를 액자에 담은 작품 100여점과 화가들의 4~10호 크기 그림 300여점이 전시된다. 싱그러운 언어와 다채로운 색감으로 생의 향기를 봄날 꽃뿌리처럼 깊고 따뜻하게 수놓은 작품들이다. 현대시와 미술의 최신 트렌드를 탐색할 수 있는 데다 독특한 시화의 조화를 감상할 수 있다.

시인들은 화랑 측이 보내준 특수 보존용 1000자 원고지에 자신의 시 3편씩을 직접 써서 출품했다. 90대 원로 시인 황금찬 씨는 ‘별과 고기’ ‘촛불’을 내놓았고, 예술원 회원 이근배 씨는 ‘찔레’를 선보인다. 김종길 씨의 ‘솔개’, 문덕수 씨의 ‘꽃과 언어’, 김후란 씨의 ‘소망’, 유안진 씨의 ‘필요충분조건으로’, 강은교 씨의 ‘아무도 몰래’, 도종환 씨의 ‘들국화’, 안도현 씨의 ‘너에게 묻는다’ 등의 시편에 사랑과 추억, 낭만의 언어가 새겨져 있다.

화가 리스트도 화려하다. 예술원 회원 오승우 민경갑 씨를 비롯해 김구림 이왈종 김원숙 김재학 이석주 주태석 등 정상급 화가 대부분이 들어 있다.

강렬한 선과 색채로 원초적인 미감을 연출한 이두식(부산비엔날레 운영위원장), 현대와 전통을 아우르는 퓨전 산수화풍으로 주목받고 있는 전준엽, 전위미술의 선구자 김구림, 리얼리즘과 초현실적 설정으로 극적 아름다움을 표현한 오승우, 여인의 행복을 시적 감수성으로 묘사한 임종두, 에로티시즘 미학을 화면에 옮긴 노광, 어머니의 축복을 진달래에 승화시킨 김정수, 장미꽃 정물화로 유명한 김재학 씨의 작품들이 주목된다.

미술 경기 불황을 반영해 판매 가격을 시중보다 최고 30% 정도 낮은 100만원대로 책정했다. 300만원 이하 작품은 손비처리가 가능해 미술품에 관심있는 기업들이 큰돈을 들이지 않고 컬렉션에 나설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화랑 앞에 관람객들이 줄을 잇고 전시작이 매진됐던 지난해 성과에 힘입어 올해는 참여 작가 폭을 더 넓혔다는 게 화랑 측의 설명이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이일영 한국미술센터 대표는 “그림이 침묵으로 이야기한다면 시는 고요함 속에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로 노래한다”며 “그 스쳐가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 내면에 숨어 있는 것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02)736-6669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