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7월19일 오전 7시11분


“마지막 남아 있던 병권(兵權)을 넘겨준 것과 마찬가집니다. 지난 8년간 장남의 경영능력을 검증해온 명예회장이 자신이 쥐고 있던 견제카드를 스스로 내려놓으면서 KCC는 본격적으로 ‘정몽진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지난달 정상영 KCC 명예회장(76)이 보유한 KCC 지분 10% 중 절반을 블록딜(대량매매) 방식으로 처분한 것에 대한 증권업계 관계자의 평이다.

시장에서는 정몽진 회장(52)이 KCC그룹의 진정한 후계자로 인정받았다고 보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 회장에게 고민은 많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KCC가 ‘신사업 발굴’이라는 커다란 숙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장남 경영권 승계

정 명예회장은 현대그룹 창업자인 고(故) 정주영 회장의 막내 동생이다. 금강스레트의 대표이사를 맡아오다 현대그룹에서 독립, 1974년 도료 생산업체인 고려화학(현 KCC)을 설립했다.

KCC는 건자재·유리·염화비닐수지(PVC) 제품 등을 생산하는 국내 최대 종합 건자재 업체다. KCC건설, 코리아오토글라스, 케이씨씨자원개발 등 20여개의 국내외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2000년 초반부터 KCC 지분 증여를 시작했다. 장남인 정몽진 KCC 회장(17.76%), 차남 정몽익 KCC 사장(8.81%), 삼남 정몽열 KCC건설 사장(5.29%) 등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2004년 지분 증여를 중단하고 자신이 나머지 지분(10%)을 직접 보유해 왔다.

이때부터 KCC그룹은 2세들이 힘을 모아 이끌었다. 정 명예회장은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그룹의 방향성과 사업 진출 등에 대해 경영자문 역할을 해왔다. KCC그룹은 꾸준히 성장가도를 달렸고, 자산가치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은 경영권의 향방을 가를 수 있는 상징적 지분(10%)을 쥐고 수년간 세 아들의 경영능력을 지켜봤다”며 “자식들이 다툼없이 그룹을 잘 이끌어 나가자 장남에게 칼자루를 넘기고 차남은 형을 보좌하며 삼남은 KCC건설을 맡도록 결정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폴리실리콘, ‘계륵’ 돌변

정 회장은 KCC 대표로 부임한 뒤 신성장동력으로 ‘폴리실리콘 사업’을 정하고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설비투자에 투입된 자금만 1조2000억원을 웃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태양광시장이 위축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지난해 12월 연산 3000t 규모 폴리실리콘 공장의 가동을 잠정 중단했다. 지난해 폴리실리콘 관련 유형자산 3237억원을 손실처리했다. 2009년 10%를 상회하던 영업이익률은 2011년 2.9%로 추락했다.

KCC의 강점 중 하나는 풍부한 현금이다. KCC는 지난 3월 말 기준 현금성자산 5725억원, 매도가능증권 약 2조원을 보유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KCC가 대규모 연구ㆍ개발에 돈을 쏟기보다는 시장에서 검증된 업체를 인수·합병(M&A)해 새로운 동력을 확보할 것으로 보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도료사업은 현금 창출력이 뛰어나지만 성장성에 한계가 있고 자재사업은 시장이 축소되는 추세”라며 “야심차게 추진한 폴리실리콘 사업이 한풀 꺾이면서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는 게 정 회장의 당면 과제”라고 말했다.

오동혁 기자 otto8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