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도성 예금증서(CD) 금리 조작의혹을 조사하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전날 10개 증권사에 대한 기습적 현장조사를 벌인 데 이어 18일엔 4대 시중은행과 한국SC 농협 부산 대구은행 HSBC서울지점으로 조사관들이 들이닥쳤다. 공정위의 조사 관행상 뭔가 ‘확증’이 없고서야 이처럼 발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공정위 내부사정에 밝은 이들의 관측이다. “우리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항변하는 은행들과 증권사들도 께름칙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공정위가 조사내용을 공개한 것도 이례적이다. 리니언시 등을 통해 결정적 물증을 확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물증 잡고 조사 착수?

공정위는 통상 현장조사를 나갈 때 담당 과장 혹은 사무관 한 명 정도만 정확한 조사 대상과 내용을 알고 있다. 나머지 조사 직원들은 시일과 장소를 집결 하루 전에 통보받는다. 이는 공정위의 내부 보안규정이기도 하다. 조사 대상과 일정, 내용이 조금이라도 새어나가는 날에는 관련 업체들이 정보가 담긴 서류를 모두 폐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비춰볼 때 공정위가 은행권 조사를 증권사들보다 하루 늦게 나간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은행권의 ‘사후 대비’에 관계없이 이미 충분한 물증을 확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최종 타깃이 은행이라면 이 같은 정황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한 공정거래법 전문 변호사는 “만약 은행들이 담합을 했다면 증권사에 대한 조사소식을 듣자마자 핵심 자료를 폐기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공정위가 그걸 알면서도 증권사부터 조사한 것은 뭔가 복안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석연찮은 CD 만기

은행들의 최근 CD 발행 내역을 살펴보면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증권사들이 유통금리 산출을 위해 금융투자협회에 신고하는 거래금리나 호가는 91일물이다. 하지만 최근 은행들이 CD 금리 산정에서 배제되는 2개월 만기의 CD 발행 비중을 대폭 늘려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올 들어 이달 18일까지 은행들이 발행한 CD는 5조9300억원어치다. 이 중 만기 2개월짜리 CD 발행액은 2조8800억원으로 전체의 48.6%로 91일물(2조1300억원, 35.9%)을 넘어섰다. 작년만 해도 2개월짜리 CD 비중은 전체의 25.7%로 91일물(31.7%)보다 적었지만 올 들어 역전된 것이다.

한 자산운용사 채권펀드매니저는 “CD 투자자들은 전통적으로 3, 6, 9개월 등 3개월 단위의 발행물을 선호한다”며 “올 들어 2개월짜리 CD가 3개월물보다 많이 발행된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은행들이 CD 금리 하락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91일물 외의 다른 만기로 CD를 발행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불만·불안 교차하는 금융권

은행들은 이 같은 얘기가 나도는 데 대해 아연실색하고 있다. “금리조작을 할 이유가 전혀 없고 담합을 한 사실은 더더욱 없다”는 것이다. CD금리를 결정할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고 한다.

때문에 공정위 조사에 대해 한쪽에선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공정위가 ‘실적주의’에 함몰돼 공연한 트집을 잡는 것 아니냐는 것. 하지만 일각에선 이번 사태가 쉽사리 넘어갈 것 같지 않다는 불안감에 애를 태우기도 한다. 특히 은행 고위층들은 조사배경을 알아보기 위해 백방으로 탐문을 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전날에 이어 18일에도 조사를 받은 증권업계는 향후 금투협에 대한 CD금리 보고를 ‘보이콧’ 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 중소형 증권사 임원은 “연초부터 시작한 CD 중개 업무에서 벌어들인 수익이 500만원에 불과한데 더 이상 이 업무를 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내부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박신영/이상열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