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자살도 순직처리 '민원해결 달인들'
“군생활 중 구타·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자살했다면 국가에서도 분명히 책임질 부분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서상원 조사관) “사실 군대는 딱딱하고 바뀌기 힘든 조직일 수밖에 없죠. 하지만 이번 권고를 국방부에서 받아들인 건 군 내부에서도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봅니다.”(문무철 조사관)

국방부는 이달 초부터 ‘전공사상자 처리 훈령’ 개정안을 시행, 공무와 관련된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은 순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아들의 ‘목숨 값’으로 단돈 500만원의 위로금을 받고 눈물을 흘렸을 뻔한 유가족들이 명예회복(국립묘지 안장)과 함께 9000만원의 보상금까지 받게 됐다.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겨’ 민원을 제기하면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현장에 나가 확인하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국민권익위원회 조사관들이다. 국방부 훈령 개정 뒷이야기를 듣기 위해 군자살자들의 순직 처리 길을 열어준 문무철(39)·서상원(38) 조사관을 최근 서울 미근동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만났다. 1년반 동안 민원 46건을 해결한 이연희 조사관(39)과 민원을 해결하지 못했음에도 민원인들의 만족도 점수가 가장 높다는 김영옥 조사관(44)도 자리를 함께 했다.

“사실 국방부에서도 공무와 관련된 자살자 순직처리에 대해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유가족들이 다시 조사해달라며 찾아가지 않은 시신이 129건이나 되거든요. 누군가가 문제 해결의 물꼬를 터주길 기다렸을지도 모릅니다.”(문 조사관)

1998년 2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벙커에서 숨진 채 발견된 ‘김훈 중위 사건’을 맡고 있는 서 조사관이 옆에서 거들었다. “저희들이 하는 일은 민원인을 대신해 팩트(사실)를 확인해주는 일입니다. 적법이냐 불법이냐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민원인들이 얼마나 답답하고 억울할지, 그들의 눈높이에서 보면 답은 의외로 간단히 나오기도 합니다.”

‘2012년 민원 불인용 만족도 1위’라는 낯선 타이틀의 김 조사관은 도시수자원민원과 소속으로 8년차 베테랑이다. “민원 중에는 해결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해결 불가능한 민원이라도 그들의 울분을 들어주고 위로해주려고 했던 것이 민원인들에게 좋게 비쳤던 것 같아요.” 통상 국민권익위에 제기되는 민원 중 20%가량만이 해결된다.

‘민원 해결사’(한 달 평균 2.5건) 이 조사관은 직업관을 풀어놨다. “조사관이란 직업은 타고나는 것 같아요. 징검다리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요. 평소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큰 다리가 끊어졌을 때 밟고 건너갈 수 있는 징검다리말이에요. 간혹 어깨가 뻐근하긴 하지만, 제 등을 밟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웃음)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