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나연(24)에게는 ‘새가슴’이라는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약해 보이는 체격에다 막판에 흔들리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게다가 그 앞에는 늘 ‘동갑내기 라이벌’ 신지애가 있었다. ‘파이널 퀸’으로 불리는 신지애와 비교되면서 더욱 초라해졌고 위축됐다.

그러나 최나연은 9일(한국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콜러의 블랙울프런 챔피언십코스에서 열린 US여자오픈 마지막 날 ‘배짱 두둑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정상에 올랐다.

5타차 선두를 달리던 최나연은 10번홀(파5)에서 티샷을 왼쪽 해저드에 빠뜨리고 말았다. 다시 티잉그라운드로 돌아가 3타째를 쳤고 5번째 샷도 그린에 못 미쳐 ‘6온2퍼트’로 트리플 보기를 했다. 동반자인 양희영(23)에게 순식간에 2타차 추격을 허용했다.

거의 ‘멘탈 붕괴(멘붕)’ 상황이었다. 최나연은 “티샷이 해저드로 들어가는 순간 ‘망쳤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을 바로잡아 보자고 마음먹었다”며 “그때부터 캐디와 내일 한국으로 갈 비행기, 차, 휴가 등 잡다한 얘기를 하면서 실수를 잊어버리려 했다”고 설명했다. 양희영과는 새로 산 강아지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전홀의 악몽을 딛고 11번홀에서 1.5m 버디를 낚아 분위기를 반전시켰으나 12번홀(파4)에서 두 번째 샷이 그린 왼쪽 깊은 러프에 떨어져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언플레이어블 선언을 고민하다 가까스로 탈출했고 6m짜리 ‘천금 같은 파세이브 퍼팅’을 성공시키는 강심장을 과시했다.

최나연의 멘탈이 강해진 것은 애리조나 스코츠데일에서 심리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골프아카데미 ‘비전 54’의 공동설립자 피아 닐슨과 린 메리엇 두 여성 코치 덕이다. 최나연이 10번홀 이후 캐디와 골프와는 관련없는 잡다한 얘기를 한 것도 이들에게서 교육받은 일종의 ‘멘붕 탈출법’이었다.

그는 “골프 샷은 5~7초면 된다. 다음 샷을 할 때까지는 골프 외의 이야기를 하다가 샷을 할 때만 집중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또 “닐슨과 메리엇이 어제 문자를 보내줬다. ‘3라운드는 잘했지만 아직 한 라운드가 더 남았다. 끝난 게 아니니 3라운드는 잊어버려야 한다. 때로는 나쁜 것뿐만 아니라 좋은 것도 잊어야 한다’고 조언해줬다”고 했다.

2주 전 채용한 캐디 셰인 조엘도 큰 도움을 줬다. 조엘은 7년간 마크 오메라의 캐디를 한 베테랑이다.

그는 “캐디가 10번홀 이후 나에게 자신감을 많이 심어줬다. ‘10번홀은 잊어라. 우린 할 수 있다. 미래만 생각하라, 과거는 과거다’라고 계속 말해줬다. 우리는 서로 재미있는 것만 얘기했다. 그러면서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