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명 피해 입힌 소셜커머스 사기 사건 그후…'40억 사기' 바지사장 3명 뒤에 전과16범 '몸통' 있었다
‘냉장고 40% 할인, 백화점상품권·주유상품권 25% 할인….’

최근 1년 새 3000여명의 피해자를 양산하며 피해액만 40억원이 넘는 온라인쇼핑몰 사기 3건의 주요 내용이다. 사기사건이 터진 온라인 쇼핑몰 그루빗, 하이플러스프라자, 쿠엔티 등 5곳의 각기 다른 3명의 사장이 주범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검찰의 수사 결과 어느 누구도 사기사건을 기획한 ‘주범’으로 최종형을 선고받지 않았다. 이들 세 명은 한결같이 자신들은 월급을 받고 이름만 빌려준 속칭 ‘바지사장’이었으며 실제 사장은 중국에 머물던 사기 등 전과 16범의 이모씨(33)라고 지목했다.

그루빗 대표인 A씨(33)는 검찰의 불기소로 무혐의 석방됐다. 하이플러스프라자 대표 B씨(25)는 1심에서 사기방조 혐의 등으로 징역 1년6월을 받았지만 이씨의 정체가 인정되면서 2심에서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됐다. B씨는 현재 상고한 상태다. 현재 구속수감돼 조사를 받고 있는 온라인쇼핑몰 쿠엔티의 김성민 대표(27)도 “이름만 빌려준 월급쟁이 바지사장”이었다고 사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바지사장을 고용해 기획사기사건을 벌인 장본인으로 주목되고 있는 이씨는 수사당국의 수사망이 좁혀지자 지난달 23일 자진입국 형식으로 국내에 들어와 서울 용산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뒤 서울 서부지검으로 송치된 상태다. 경찰은 김씨와 이씨의 진술 내용 등으로 봤을 때 이씨가 쿠엔티뿐만 아니라 또 다른 온라인쇼핑몰 사기사건 2건의 주범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씨가 이른바 ‘바지사장’을 각각 내세워 3건의 사기행각을 벌였고, 3000여명에게서 약 44억원을 가로챘다는 얘기다. 이씨를 수사 중인 서부지검 담당검사는 “진행 중인 사건내용을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한 명의 몸통과 세 명의 바지사장. 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기자는 온라인쇼핑몰 사기사건에 연루된 ‘바지사장’ 세 명을 만났다.

○“난 월 200만원짜리 바지사장”

식당을 운영하는 A씨가 지인의 소개로 이씨를 알게 된 건 작년 7월이었다. A씨는 이씨의 첫인상에 대해 “만나지는 못했지만 전화상으로는 말재주가 좋았으며, 상냥하고 남에게 신뢰를 주는 스타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A씨에게 돈은 자신이 투자할 테니 전자제품을 파는 온라인쇼핑몰을 같이 운영해보자고 제안했다. 이씨는 “대표 직함만 걸고, 사업 초반에 쇼핑몰이 자리잡는 걸 도와주면 매달 200만원을 주겠다”고 말했다.

한 달 뒤 이씨는 A씨에게 초기 자금으로 526만원을 송금해줬다. A씨는 이씨의 지시에 따라 인천 중동에 보증금 87만원에 월세 77만원짜리 사무실을 얻고, A씨 명의로 사업자등록도 했다고 한다. 인터넷 전화 30여대와 렌털한 컴퓨터 5대를 중국으로 보내 이씨와는 인터넷 전화와 메신저로 사업 얘기를 했다. A씨는 “중국에서 BMW와 아우디를 몰고 다닌다는 지인의 말을 들었던 터라 이씨를 유망한 젊은 사업가로 여겨 사기라고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해 11월2일, A씨는 ‘그루빗’이라는 온라인쇼핑몰을 시작했다. A씨는 고객 게시판 등 인터넷 사이트 관리를 맡고, 이씨는 제품 배송 등을 담당했다. A씨는 “돈관리는 철저히 이씨가 했다”고 말했다. 고객들이 입금한 돈은 모두 30대 중반의 조선족 ‘전달책’이 정기적으로 와서 한 번에 3000여만원씩 중국에 있는 이씨에게 전달됐다. 쇼핑몰 광고비와 제품 구입·배송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냉장고 등을 최대 40% 싼 가격으로 판매하니 입소문을 타고 손님이 몰렸다. 매출도 금세 5억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A씨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제품을 배송하는 데 14일 정도 걸린다던 이씨가 배송을 차일피일 미뤘기 때문이다. 이씨는 택배 회사와 문제가 있어 배송이 늦어지고 있다고 핑계를 댔다고 한다. 오히려 이씨는 A씨에게 배송이 늦어져 항의하는 고객들에게 “주문이 폭주해 예정된 배송일보다 1주일 정도 늦어질 것 같다”는 내용의 댓글을 달도록 지시했다.

고객들의 빗발치는 항의에 작년 12월28일 A씨는 중국 칭다오에 가서 이씨를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이씨는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고 잠적했다. 피해자들은 서울 용산경찰서에 A씨를 고소했다. A씨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경찰에 자수했다.
3000명 피해 입힌 소셜커머스 사기 사건 그후…'40억 사기' 바지사장 3명 뒤에 전과16범 '몸통' 있었다
○1명 무혐의,1명 감형…44억원 사기 진범은?

온라인쇼핑몰 사기사건 5건을 주모한 것으로 알려진 이씨를 조사 중인 서울 서부지검은 지난 1월 “(A씨가) 이씨에게 속아 쇼핑몰에 관여하게 됐고, 고객의 돈을 떼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돈을 벌 목적으로 사이트를 운영한 정황이 보인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문제는 A씨 이외에도 이씨에 속은 바지사장이 두 명 더 있다는 것이다. 경찰은 하이플러스 운영자 B씨, 쿠엔티 운영자 김씨 등도 이씨에게 속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3개 인터넷쇼핑몰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이 3000여명. 전체 피해액은 44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산에서 에어컨 설치 일을 하던 B씨도 이씨를 만나 ‘패가망신’한 케이스다. B씨는 지난해 5월 인터넷 구직 사이트인 ‘알바천국’에서 ‘쇼핑몰 운영자를 구합니다’라는 광고를 낸 이씨와 알게 됐다. A씨처럼 월 200만원을 받기로 하고 전자제품 쇼핑몰 ‘하이플러스프라자’의 대표로 이름을 올렸다. 광고집행이나 매출대금 관리는 이씨가 전담했다. B씨는 “쇼핑몰 판매대금 5억원을 현금화해 조선족 직원에게 전달했다”며 “자신은 판매대금은커녕 월급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A씨가 당한 그대로였다.

이씨의 사기 수법은 이후 진화했다. 지난 4월엔 전자제품 대신 상품권 할인 판매에 눈을 돌렸다. 바지사장으로 김성민 씨를 고용했다. 백화점상품권 등 유가증권을 할인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최대 30%까지 싸게 해준다며 손님을 끌어 모았다. 1차 배송분은 예정대로 전달, 입소문을 통해 고객을 더 끌어모은 뒤 잠적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김씨는 “(이씨가)상품권 지급을 조금씩 미루긴 했지만 곧 해결할 것”이라고 안심시켜 이를 믿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검찰은 실제 이씨가 바지사장을 고용해 돈을 챙겼는지, 가로챈 45억원은 어디에 썼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손해피해 보험 의무화해야

하이플러스프라자 그루빗 등 사기 쇼핑몰을 수사했던 용산경찰서는 얼마 후 일어난 쿠엔티의 사기 행각을 지난 4월 미리 감지했다. 경찰은 쿠엔티 측에 “유가증권 판매는 법에 어긋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영장이 발부되지 않아 영업을 정지시키지는 못했다. 문의철 사이버수사팀장은 “일찍 막았어도 피해액수가 이렇게 커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기 사이트에 대한 ‘경보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 명의 피해자라도 있으면 인터넷 포털 등과 협력해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며 “사업자 등록시 손해피해 보험 계약을 의무화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이버 범죄 전문가인 장윤식 경찰대 교수는 “사이버 경제사범의 은닉 재산을 환수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며 “재산을 끝까지 추적해 ‘먹튀’가 불가능하다는 걸 각인시켜줘야 예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신생 사이트에서 구매하는 것보단 이미 알려진 대형 소셜커머스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지혜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쿠엔티 사이트 피해자 김모씨(32)는 “바지사장들이 거짓 댓글을 다는 등 사기를 방조한 책임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소셜 커머스

social commerce.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뤄지는 전자상거래.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에 일정 참가자 이상이 구매 신청을 하면 가격을 할인해주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국내에는 2010년 초 처음 도입돼 티켓몬스터, 쿠팡 등의 10여개 업체가 성업 중이다.


김우섭/이지훈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