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전 세계 금융시장은 살얼음판이었다. 9월15일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유동성이 말라붙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서로 믿지 못해 돈 빌려주기를 꺼렸다. 유동성 위기설이 돌면 곧바로 파산으로 직행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리보(LIBOR·런던 은행 간 금리)는 뛸 수밖에 없었다.

영국 3위 은행 바클레이즈는 의문에 휩싸였다. 10월 들어 매일 바클레이즈가 제출하는 리보가 16개 은행 가운데 가장 높거나 두 번째로 높았기 때문이다. 바클레이즈보다 재무상황이 훨씬 안 좋은 은행들이 제출하는 금리도 바클레이즈보다 낮았다.

10월29일. 밥 다이아몬드 바클레이즈 최고경영자(CEO)는 폴 터커 영국 중앙은행(BOE) 부총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리보를 높게 보고할 필요는 없네. 화이트홀(영국 정부청사) 고위층 인사들의 의견이네.”

이 한 통의 전화가 최근 전 세계 금융시장에 파문을 몰고 온 바클레이즈 리보 조작 사건의 시작이었다. 바클레이즈는 4일부터 이틀 일정으로 열리는 의회 청문회를 앞두고 이 같은 내용의 내부 문건을 홈페이지에 전격 공개했다. 영국 중앙은행은 물론 정부도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10월29일 걸려온 전화

다이아몬드 CEO는 터커 부총재와의 전화 내용을 직접 문서로 작성했다. 터커 부총재는 당시 중앙은행의 금융시장 안정 담당자였다. 다이아몬드 CEO는 당시 바클레이즈캐피털의 공동대표였던 제리 델 미시에르 최고운영책임자(COO)에게 이를 전달했다. 미시에르는 정부 고위층이 BOE를 통해 리보 인하를 지시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당장 그 다음날인 10월30일 리보를 전날보다 크게 낮춰 보고했다. 3개월물 금리를 전날 4%에서 3.4%로 확 떨어뜨린 것이다.

영국은행협회(BBA)에 따르면 0.6%포인트는 그날 각 은행이 제출한 리보 하락폭 가운데 가장 컸다. 같은 날 HSBC는 3개월물 리보를 전날 3.4%에서 3.15%로, 로이즈뱅킹그룹은 3.35%에서 3%로,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는 3.6%에서 3.3%로 각각 낮췄다. UBS는 3.4%에서 3.2%로, 크레디트스위스는 3.55%에서 3.15%로, 도이체방크는 3.45%에서 3.25%로 각각 내렸다. 이에 따라 3개월물 리보는 3.42%에서 3.1925%로 낮아졌다. 모든 은행이 한꺼번에 금리를 낮춰 보고한 결과였다.

○리보금리 조작 왜?

리보 조작 의혹은 스위스 UBS가 금융당국에 2010년 연례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수면으로 떠올랐다. 미국과 영국, 일본 금융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는 내용이 공개된 것이다. 각국 금융당국은 다른 은행들이 조작에 가담했는지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바클레이즈가 가장 먼저 철퇴를 맞은 것이다.

바클레이즈는 최근 벌금을 부과받고 다이아몬드 CEO 등 고위 경영진이 대거 사퇴했다. 리보 조작 사건 파문이 확산되자 4일 내부 문건을 공개했다. 이를 통해 리보 조작에 바클레이즈뿐만 아니라 대형 은행들이 대거 가담했다는 사실과 함께 영국 금융당국이 직접 개입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대형 은행들이 금리를 낮게 조작한 것은 신용도 때문이다. 금리가 높다는 것은 해당 은행의 신뢰도가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바클레이즈는 재무 상황이 탄탄하고, 신용도가 높아 보이도록 지급하는 금리를 낮게 조작했다는 것이다. 바클레이즈뿐만 아니라 다른 은행들이 연루됐을 가능성도 높다. 리보는 16개 은행이 금리를 적어 내면 상하위 25%를 빼고 8개 평균으로 산정하기 때문에 바클레이즈 혼자 조작하기는 힘들다. 은행들의 리보 조작 담합설이 나오는 이유다.

○英중앙은행과 美도 안전하지 않다

파문은 영국 금융당국은 물론 노동당 정권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고든 브라운 정부가 조직적으로 리보 조작을 주도했다고 보도했다. 총리실에서 금리 조작을 지시하는 문건을 작성해 은행권과 중앙은행에 돌렸다고 전했다.

BOE뿐만 아니라 미국 중앙은행(Fed)도 리보 조작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바클레이즈는 문건을 통해 BOE뿐만 아니라 Fed 관계자들이 리보 조작 문제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미국도 대형 은행들의 리보 조작 가능성을 조사 중이다.

뉴욕타임스는 영국과 미국 금융당국이 10개 이상의 대형 은행들을 대상으로 관련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미국 금융당국이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UBS, 씨티그룹 등에 소환장을 발부한 상태라고 전했다.


◆ 리보

London Inter-Bank Offered Rates. 런던에 있는 대형 금융사들이 자금을 거래할 때 적용하는 만기 6개월 이내의 단기 금리. 세계 각국의 금융거래에 쓰이는 대표적인 기준금리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