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라고 해서 일반 시민과 다른 대접을 받아서는 안된다. 자신의 행위에 대해 일반인과 똑같이 책임을 져야 한다.”

프랑스 대통령 선거전이 치열하게 펼쳐졌던 지난 4월26일. 프랑수아 올랑드 당시 사회당 후보는 유세 도중 ‘법앞의 평등’을 이같이 강조했다. 니콜라 사르코지(사진) 당시 대통령의 각종 불법 정치자금 의혹 등 스캔들을 꼬집은 것이다. 반면 자신은 ‘보통 대통령(President ordinaire)’이 될 것이라면서 사르코지와 각을 세웠다.

그 뒤 프랑스에서 17년 만에 좌파 정권이 들어섰고, 사르코지는 권좌에서 물러난 지 49일 만에 경찰의 수사선 상에 올랐다. 프랑스 경찰이 3일(현지시간) 전격적으로 사르코지의 파리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 사르코지가 가족과 함께 휴가차 열흘 일정으로 캐나다에 있는 기업인 친구 폴 데마레를 방문하려고 자리를 비운 사이였다.

수사당국의 칼끝이 직접 겨누고 있는 것은 사르코지의 2007년 대선 자금이다. 당시 세계 최대 화장품 업체 로레알의 상속녀 릴리안 베탕쿠르가 400만유로(약 57억2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사르코지 측에 건넸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이 ‘검은 돈’은 사르코지의 보좌관들을 거쳐 사르코지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불법선거자금 의혹은 대선 전부터 불거졌지만 사르코지는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기간에는 면책특권 덕에 사법당국의 조사를 피할 수 있었다. 사르코지는 관련 의혹을 계속 부인했지만 면책특권이 사라진 만큼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됐다. 이미 베탕쿠르 측근 등 핵심 관계자들이 구속되는 등 수사망이 좁혀지고 있다. 프랑스 언론들은 사르코지 소환 가능성까지 점치고 나섰다.

사르코지로선 권력의 보호막이 걷히자마자 일반인과 똑같이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프랑스판 ‘권불오년(權不五年)’이 빚어진 셈이다. 사르코지의 변호인인 티에리 에르조그는 “경찰에 관련 문건을 충실히 제공했음에도 경찰이 과잉수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이제 대통령이 아닌 ‘시민’ 사르코지가 카라치, 베탕쿠르, 카다피로부터 3각 폭격을 받게 됐다”고 논평했다. 1994년 사르코지가 파키스탄에 무기수출을 하고 사례금을 받았다는 ‘카라치 커넥션’과 베탕쿠르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 2007년 리비아 전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로부터 5000만유로(약 715억원) 정치자금 수수의혹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됐다는 설명이다.

프랑스에선 전직 대통령이 불법 정치자금 때문에 법의 심판대에 오르는 일이 되풀이돼 왔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도 지난해 12월 파리 시장시절 공금을 유용한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은 임기 후반 정치자금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지지도가 급락했다.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전 대통령도 재임 당시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독재자 장 베델 보카사로부터 고가의 다이아몬드 선물을 받았다는 스캔들에 휘말렸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