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소비세 증세 관련법안의 표결이 이뤄진 지난달 26일 중의원 본회의장.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민주당 대표는 표결 결과가 나오자 만족스런 표정으로 “좋았어”라고 외쳤다.

찬성 363표로 법안이 통과됐지만, 자신과 함께 증세에 반대한 의원들이 예상보다 많았기 때문이었다. 반대표는 기권을 포함해 총 96표로 오자와 계파 의원 숫자(46명)를 훌쩍 넘었다.

증세법안 표결을 주도한 노다 요시히코 총리 등 민주당 집행부엔 비상이 걸렸다. 분당 사태를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지만 결국 중의원 37명, 참의원 12명 등 민주당 소속 49명의 의원이 오자와를 따라 보따리를 쌌다. 민주당은 간신히 과반의석을 지켜내긴 했지만, 여론의 흐름에 따라 언제든 추가 탈당자가 나올 수 있다.

민주당의 분열은 출범 초기부터 싹이 텄다. 세금을 올리지 않고서도 복지정책을 강화하겠다는 장밋빛 선거공약부터 무리였다. 일본의 재정상황을 고려할 때 약속 파기는 시간문제였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00%를 넘는다. 재정 파탄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그리스보다 높은 수준이다.

무너진 재정을 바로 세우려면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세금을 더 거둬 세입을 늘리거나, 과도한 복지정책을 정리해 세출을 줄이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런 현실을 외면했다. 공약을 믿고 민주당에 표를 던졌던 유권자 가운데 상당수는 “속았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지지율은 정권 붕괴의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20%에 바짝 다가섰다. 세 번이나 당을 깼던 ‘정치 9단’ 오자와는 “선거 공약을 지키라”며 민주당의 이런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일본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민주당이 싫긴 하지만, 그렇다고 오자와의 신당에 대해서도 기대하지 않는다. 자민당 체제로 다시 돌아가는 것도 탐탁지 않다. 노다 내각 출범 이후 1년 만에 일본이 다시 정치적 진공상태에 빠져든 셈이다.

동일본 대지진과 글로벌 경기 침체로 어느 때보다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한 일본이다. 이 와중에 정치권은 ‘새 총리 선출’이라는 엉뚱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정치권엔 활력이 돌지만, 국민은 고달프다. 장밋빛 공약의 대가는 언제나 그것을 선택한 국민이 치른다.

안재석 도쿄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