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정상회의 '해피엔딩'…이탈리아·스페인 "만족 두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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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매입·부실銀 직접 지원…'발등의 불' 해결
獨 입김 센 ECB가 자금 관리…긴축 의무 여전
獨 입김 센 ECB가 자금 관리…긴축 의무 여전
“두 배의 만족이다.”(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 “협상은 이제 시작이다.”(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지난달 28, 29일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는 일단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독일은 예상을 깨고 유럽기금으로 재정위기국 국채를 직접 매입하라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요구사항을 전격 수용했다. “이제껏 열린 EU 정상회의 중 가장 성공적”(월스트리트저널)이란 평가와 함께 미국과 유럽 증시도 급등했다. 하지만 합의 내용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정치적·법적 장애물이 만만치 않아 효과가 단기에 그칠 것이란 비관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예상외의 결과…시장은 화답
EU 정상들은 유로안정화기구(ESM)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등 위기대응 기금이 이탈리아 스페인 등 재정위기 국가의 채권을 직접 매입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또 ESM이 국가를 통하지 않고 은행권을 직접 지원할 수 있게 했다. 이 경우 국가 부채를 늘리지 않으면서 재정 지원을 할 수 있게 된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은행권 통합의 첫 단계로 단일감독기구를 만들기로 했다. 아울러 조만간 집행될 스페인 은행권에 대한 구제금융에서 ESM의 최우선순위 채권자 자격도 없애 일반 채권자와 동일한 변제권을 갖도록 했다.
이 같은 결정은 정상회의 시작 직전까지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유로존 3, 4위 경제대국인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대한 전면적 구제금융설이 확산되자 독일도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다.
가장 큰 아군이었던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을 잃은 메르켈 총리가 독일의 입장만을 고수하기 힘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거듭된 긴축정책으로 자국에서 인기가 떨어진 몬티 총리가 10차례 이상 메르켈 총리와 개별 회동을 갖는 등 공을 들인 것도 협상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시장은 즉각 화답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에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2.5% 올라 1362.16으로 마감했다. 다우존스도 2.2% 상승해 12,880.09를 기록했다. 두 지수는 6월 한 달 기준으로 13년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8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는 9.4% 뛴 배럴당 84.9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단기 효과에 그칠 수도
예상 밖의 성과를 얻었음에도 정상회의 ‘약발’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된다. 구체적인 지원 조건을 확정하기까지 과정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EU 정상들은 유럽중앙은행(ECB)이 중심이 된 은행권 단일감독기구의 관리 아래서만 ESM이 위기 국가의 국채를 매입하거나 은행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단일감독기구의 성격에 따라 지원 조건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ECB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가진 독일이 까다로운 전제조건을 요구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상회의 직후 독일 야당은 물론 메르켈 총리가 소속된 기독교민주당에서도 ‘잘못된 협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메르켈 총리도 귀국 직후 “엄격한 긴축 없이 스페인 은행들이 독일 납세자의 돈을 쓸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원하는 대로 국채 직매입이 단행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근본적 해결책은 없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2009년 유럽 재정위기가 시작된 뒤 1조유로가 넘는 돈을 지원했는데도 유로존의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는 오히려 늘었다. ESM이 최대 5000억유로를 추가 지원해도 재정위기를 끝내기에는 역부족이란 것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우리는 가라앉는 배를 끌어올렸다고 안도하고 있다”며 “문제는 배에 난 구멍(재정적자)을 막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