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라는 직장에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면, 그중 하나가 아주 넓고 잘 가꿔진 정원이다. 어느 직장이 이만큼 거대하고 깔끔한 정원을 가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른 아침 국회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이 넓은 잔디밭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스프링클러다. 상쾌한 아침 출근길에 큰 원을 그리며 푸른 잔디를 촉촉하게 적시는 물방울을 바라보고 있자면, 잔디에 투명하게 맺힌 채 클로즈업돼 다가오면서 물이 주는 포근하고 안정된 이미지에 푸욱 잠기게 된다.

2008년 겨울 무렵 임신으로 몸이 무거워져 무척이나 고생할 때였다. 임신하면 나오는 무슨 호르몬 탓인지 너무 씩씩하다 싶을 정도로 잘 지내다가도 가끔씩 갑자기 센티멘털해지곤 했다. 몸과 마음이 지쳐 거의 바닥에 닿았을 때, 보다 못한 남편이 산정호수에 가자고 했다. 대학 때부터 지겹게 갔는데 거길 왜 가냐며 투덜거리면서도 따라나섰다. 호수 근처 가게에 들러 어린애처럼 번데기, 어묵…, 별의별 군것질도 하고 호숫가를 따라 난 오솔길을 걷다가 근처 벤치에 앉았다. 그때 호수에 가득 차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그렇게 사람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걸 처음 알았다. 뱃속의 아기가 엄마 양수 속에서 느끼는 편안함이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태어날 아기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같이 바라보았던 잔잔한 호수, 작은 찰랑임 소리…. 산정호수에서의 그 기억 덕분에 나는 출산할 때까지 아주 씩씩하게 잘 지낼 수 있었다. 지금도 산정호수는 나에게 기분 좋은 나른함, 희망과 평화 같은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얼마 전 신문에서 충격적인 사진을 보았다. 계속된 가뭄으로 산정호수의 바닥이 드러나 쩍쩍 갈라져 있는 장면이었다. 그 사진 한 장에, 나에게 힘을 주었던 기억 하나도 쩍쩍 갈라지는 느낌이었다. 일견 낭만적일 수 있는 국회 정원의 스프링클러도 이젠 그냥 그렇게 바라볼 수가 없다.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면서 업무상 골프장을 찾을 때 흔히 보던 스프링클러지만 나에게 별다른 감흥을 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젠 아침저녁으로 정신없이 돌고 있는 스프링클러를 보면 가뭄이 심각하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고, 지역 가뭄 피해 상황부터 확인하게 된다. 정성들여 가꾼 농작물이 타들어 가는데 농민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싶다. 내가 기업인에서 정치인으로 바뀌어가고 있긴 한 모양이다.

마침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창밖으로 시원한 빗줄기가 내리는 게 보인다.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전국의 논밭에 단비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흐뭇해진다. 다시 물이 가득 차 찰랑이는 산정호수를 보러 가야겠다.

이언주 < 국회의원(민주통합당) k041036@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