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단이나 사회에는 뒤처지는 개인과 무리가 있게 마련이다. 유명 대학에서 아무리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도 입학 후에 학업이 떨어지는 학생이 있고, 유망 직장에서 우수 인재를 뽑아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업무능력이나 실적이 뒤처지는 사람이 생겨난다.

이 현상을 대개 20:80법칙으로 설명한다. 어떻게 집단이 구성되든 집단 내 20%가 늘 노력을 하는 반면 나머지 80%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하위 80%를 다시 떼어내도 20:80의 분할이 계속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사회에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베짱이처럼 놀고먹는 존재가 따로 있다는 패배주의적 결정론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정책, 특히 정치권에서 나오는 정책도 마찬가지다. 우선 선거 때마다 써먹는 ‘서민정책’의 허구가 그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내놓는 공약들이 ‘서민대책’ ‘서민을 위한 정책’이지만, 실상은 서민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영세 서민으로 고착시키거나 더욱 궁핍하게 하는 정책들이다. 또한 양극화를 해소한다고 ‘보편적 복지’를 내세우며 무상복지정책만을 쏟아내는 것도 80% 국민들을 무기력한 빈곤의 틀 속에 항구적으로 가두려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도 진정 서민을 위하는 정책이라면 서민을 두터운 중산층으로 끌어올려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20:80법칙은 긍정적 측면이 있다. 20:80의 분할을 단순한 산술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에 내재하는 일종의 조직 역학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삶의 질이 떨어지는 서민들을 위하는 길은 그들 간의 조직 역학인 상호경쟁 유인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나라재정 형편을 고려하지 않은 각종 무상복지정책은 사회 구성원 간의 역학 기제를 무시한 포퓰리즘 발상으로 조만간 국가재정 파탄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70년대 이후 우리가 절대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빈곤을 물려받은 다수에게 경쟁이라는 조직 내 역학이 선(善)순환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나라 형편이 그때와 다르므로, 그 당시 새마을운동과 같은 정신계몽운동이나 정부 주도의 수출진흥 정책 등을 똑같이 반복하자는 말이 아니다.

현재 국민소득수준이나 경제규모에 맞는 ‘서민탈출’ 정책에 필요한 다음 몇 가지는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첫째, 가진 사람들의 것을 빼앗고 규제해야 정의롭다는 어리석은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재래시장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대형마트 영업을 규제하는 게 단적인 예다. 둘째, 약자보호정책의 한계를 정해야 한다. 이를테면 중소기업 지원책이 한시적으로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지 않은 중소기업이 각종 혜택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해 대기업으로 성장·전환하는 것을 꺼린다는 점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는 글로벌 경쟁에 참여할 대기업을 육성할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셋째, ‘보편적 복지’라는 말을 버리고 복지정책은 복지 수혜가 절대 필요한 계층에 집중돼야 한다. 최근 재정상 이유로 지자체가 반발하는 등 무상보육 정책이 난관에 봉착한 것은 이 점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지정책은 외부효과와 사회안전망 구축 차원에서 20:80의 구도에서 최종으로 남는 20~30% 정도의 계층에 집중되도록 해야 한다.

최근의 서민정책이라는 것이 마치 침몰하는 타이타닉호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배 밑바닥 3등칸을 개선한다고 배 상층에 위치한 1등칸의 재화를 무턱대고 빼앗는 격이다. 가장 급선무는 배가 침몰하는 것을 막는 일이다. 그런 후 3등칸을 2등칸 수준으로, 2등칸을 1등칸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노력이 경주돼야 한다. 그러나 요즈음 상황은 각 등급을 모두 없애는 데 함몰돼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항진을 멈추고 침몰하는 것을 방치하는 상황에 비유할 수 있다. 호국·보훈의 달에 서민정책, 복지정책도 호국의 차원에서 고려돼야 함을 새겨야 할 것이다.

김정래 < 부산교대 교수·교육학 duke77@bnue.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