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일산에 사는 A씨는 3년 전 은행에서 1억5000만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 자세한 설명 없이 은행 창구 직원의 권유에 따라 3억원짜리 집 등을 통째로 담보로 잡는 포괄근저당 설정에 동의했다. 담보로 빌린 돈뿐만 아니라 신용대출, 카드 빚, 보증 등 사실상 모든 채무에 대해 담보를 제공한 것이다. 이후 A씨는 대출금을 성실히 갚아 왔지만 보증을 서 준 친구가 대출을 연체하면서 날벼락을 맞게 됐다. 은행이 포괄근저당을 이유로 주택을 압류하겠다고 A씨에게 통보했기 때문이다.

다음달 2일부터 A씨처럼 대출을 받을 때 포괄근저당을 설정했다가 피해를 입는 사례가 없어질 전망이다. 이미 설정된 포괄근저당이 모두 건별 담보를 제공하는 한정근저당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기존 한정근저당도 담보를 잡는 채무 범위가 대폭 축소된다. 소비자들은 일일이 은행 창구를 방문해 개별적으로 근저당을 변경할 필요가 없으며 은행들이 전체 근저당 계약을 한꺼번에 조정하기로 했다. 금융감독원은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은행의 포괄근저당 일괄해소 및 피담보채무 범위 축소 시행’ 방안을 내달 2일부터 시행한다고 25일 발표했다.

우선 작년 말 기준으로 90조원(129만건)에 달하는 포괄근저당 설정 가계대출 계약은 모두 한정근저당으로 바뀐다. 가계대출의 경우 담보대출에 한해서만 저당을 잡히고 담보와 상관없는 신용대출이나 보증, 신용카드 빚에 대해서는 담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신규 대출뿐만 아니라 만기연장·재약정·대환과 같은 기존 대출을 갱신하는 경우에도 은행은 개인을 대상으로 한 포괄근저당을 아예 요구할 수 없다. 다만 여신거래가 많은 법인의 경우 채무자가 원할 때만 포괄근저당을 설정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한정근저당의 경우엔 빚을 갚지 못했을 때 처분당하는 담보 범위가 일괄 축소된다. 담보를 제공하고 지게 된 채무가 ‘증서대출’ 등과 같이 여러 종류의 여신을 포괄하는 방식일 경우 빚을 낸 사람의 대출채무로만 담보 범위가 제한된다. 가계대출은 담보대출에만, 기업대출은 잔액이 있는 대출에만 한정근저당을 설정할 수 있다. 은행들이 한정근저당의 담보 범위를 과도하게 확대 적용해 사실상 포괄근저당처럼 활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정근저당이 설정된 가계대출은 237조원(285만건)에 이른다.

금융당국은 대출받을 때 빚을 갚지 못했을 경우 처분당하는 담보를 여신분류표에 지정하는 방식도 도입한다. 근저당 설정을 할 때 소비자들이 받는 대출의 종류를 명확히 이해한 상태에서 담보로 잡히는 채무를 확인, 지정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 밖에 3자가 담보를 제공하는 경우 담보 제공자가 빚을 낸 사람의 채무 상황을 알 수 있도록 은행이 반드시 안내하도록 했다. 대출상환 시에는 은행이 근저당의 소멸·존속 여부에 대한 담보 제공자의 의사를 반드시 확인하도록 했다.

이경식 금융감독원 은행영업감독팀장은 “근저당 설정과 관련해 담보 제공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거나 예상치 못한 재산상의 피해를 끼칠 수 있는 불합리한 관행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포괄근저당

은행이 하나의 저당으로 모든 채무(대출·카드빚·어음·보증 등)에 대해 담보권을 갖는 것으로 일명 ‘통담보’로도 불린다. 한 가지 채무라도 변제되지 않으면 담보가 통째로 넘어갈 수 있어 은행에 지나치게 유리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