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날마다 우리 대중매체들이 보도하는 소식들엔 중국과 관련된 것이 빠지지 않는다. 중국 정부가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강제 송환한 일부터 대한민국 해역에서 불법 어로를 한 중국 어선들이 우리 경찰에 폭력적으로 저항하는 일을 거쳐 중국 사람들이 우리 기업의 재산권을 막무가내로 침해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중국 정부 및 시민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중국의 이런 행태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물론이고 심리적으로 손실을 크게 입으면서도, 우리는 그런 상황에 대해 깊이 논의하지 않는다. 여러 요인들을 꼽을 수 있겠지만, 근본 원인은 우리 시민들이 중국 정권의 성격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중국은 권력을 독점한 공산당 정권이 다스리는 사회다. 비록 1978년 이후 시장경제 체제를 많이 도입해 왔지만, 중국은 본질적으로 공산주의 이념을 따른다. 따라서 권위의 원천은 공산당이지 국가나 시민들이 아니다.

이처럼 중국은 시민들이 권위의 원천인 정상적 국가가 못 된다. 자유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모든 시민들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며 나랏일을 맡을 지도자를 뽑는 국가가 아니다. 개인적 수준에서든 국가적 수준에서든 우리가 중국 사람들과 교섭할 때, 우리는 이 사실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다. 이것은 근본적 실책으로서 우리의 이익과 안전에 큰 위협이 된다.

공산주의나 민족사회주의와 같은 전체주의의 본질적 특징은 도덕성과 절차적 안정성이 없다는 것이다. 전체주의 사회에선 지도자가 모든 다른 권위들보다 우월하다. 레닌, 히틀러, 마오쩌둥은 절대적 권위를 누렸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하는 사회적 목표에 나라의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따라서 지도자가 제시한 목표의 달성에 이바지하는 행위들은 그 자체로 선이고 방해가 되는 행위들은 그 자체로 악이다. 선악을 판단할 객관적 기준이, 즉 도덕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체주의 사회는 본질적으로 부도덕하다. 지도자가 제시하는 목표는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그리고 새로 나온 목표에 이바지하지 못하면, 이전 목표에 이바지한 행위들도 이내 부도덕하게 된다. 이런 탓에 절차적 안정성이 없고 어제의 영웅이 오늘의 역적이 되는 일이 흔하다.

전체주의 사회에 도덕성과 절차적 안정성이 없다는 사실은 요즘 중국이 보여주고 있는 부도덕하고 불안정한 행태를 잘 설명해 준다. 자국 시민들을 억압하고 티베트와 신장성에서 원주민들을 탄압하고 북한이나 미얀마처럼 사악하고 무능한 정권들을 지지하는 행태는 그 점을 고려해야 설명될 수 있다.

개인적이든 국가 차원이든 우리는 중국과 교섭할 때 이 점을 늘 고려해야 한다. 특히 중국에 진출하는 기업들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위험의 크기를 제대로 측정할 필요가 있다. 전체주의 사회에선 조약도 계약도 항구적 권리와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지도자의 결정으로 모든 것이 뒤바뀔 수 있다. 당연히 중국에서의 사업은 보기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물론 중국이 보편적 도덕과 규범을 마구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제 질서와 여론은 중국이 보다 합리적으로 행동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우리는 크게 불리하다. ‘전체주의자들이 알아듣는 유일한 언어는 힘’이라는 격언이 말하듯이 중국은 힘센 나라들에만 순리적으로 대응한다. 중국과 바로 이웃하고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해도 보복이 두려워 제대로 항의조차 못한다.

이런 사정은 중국이 전체주의 체제를 버리고 자유로운 사회가 되면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중국의 민족주의적 태도는 여전히 강할 것이고, 중국의 바로 이웃인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로 늘 속을 썩일 것이다.

강대국과 이웃하고 있다는 건 그 자체가 불안 요인이다. 중국은 점점 강성해지고 우리는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중국에 대한 의존이 깊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시원스러운 대책이 나오긴 힘들다. 그러나 중국 정권의 성격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은 현실적 대응을 찾아 위험과 손실을 줄이는 데 필수적이다.

복거일 < 소설가·객원논설위원 eunjo3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