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와 경제정의실천연합이 입을 맞춘 듯 동시에 ‘공중보건 장학생’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군 복무 대신 농어촌 등 의료취약지역에 파견되는 공중보건의사(공보의)가 2020년까지 1000명 가까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돼 대응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원래 공보의 제도는 1979년 농어촌 등 의사가 없는 벽지의 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됐다. 고속철도 등 대중교통망 확대, 정보통신망 발달로 사실상 고전적 개념의, 의사 없는 지역이 급감하고 있는 21세기에는 그 역할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하다. 실제 공보의는 그 취지와는 달리 저가의 노동력 활용 수단으로 둔갑한 상태다.

2009년 보건산업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공보의 가운데 민간병원과 보건단체 등에 배치돼 일반환자 진료 등에 활용되는 인력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복지부는 공보의가 부족하니 공중보건 장학생 제도를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의료계의 불만과 우려가 여기에 있다. 정부가 현실을 냉정하고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근시안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공보의 감소의 큰 원인 중 하나는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제도다. 의료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추진된 의전원은 의료계가 처음 예상한 대로 많은 부작용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과 출신 졸업생들의 블랙홀로 이공계 기피 현상을 심화시켰고 기초의학 지원도 늘어나지 않은 데다 등록금 인상 등 사회적 파장을 증폭시켰다. 이 상태라면 앞으로 의전원 정원은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의전원 학생 수와 공보의 숫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컨대 의전원 학생 가운데 상당수는 군 복부를 마친 뒤 입학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의전원 학생 중 공보의로 차출되는 인원은 그리 많지 않다.

지금 당장 공중보건 장학생을 선발한다고 해서 공보의 부족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복지부가 공중보건 장학생을 선발한다고 해도 배출되는 시기는 최소 6년 이후다. 전문의 배출은 11년이나 지나야 한다. 그렇다면 11년 후의 의전원 정원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의사협회 추산으로는 현재 1700명 가까운 학생 수가 대폭 감소해 수백명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의대생 수가 다시 증가할 수도 있다.

현재 공보의 부족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의전원 문제가 그때는 큰 문제가 안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복지부는 의사 인력 양성에 필요한 기간 등을 면밀히 계산해본 것인지 묻고 싶다.

효용성을 살펴보자. 의과대학 혹은 의전원 등록금은 현재 1000만원이 넘는 곳도 있다. 산술적으로 정부가 장학생을 1000명 선발하려면 정부 지원으로 1년에 100억원 이상이 소요된다. 모두 국민의 혈세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같은 예산을 투입하면 원하는 수의 공중보건 장학생을 선발할 수 있을까. 이미 군 장학생 제도가 있는 군의관도 아직 장기적으로는 인력 부족 문제로 시달리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최근 공연 중인 ‘닥터 지바고’ 뮤지컬을 보면 볼셰비키 혁명 이후 빨치산 게릴라들이 주인공 유리 지바고를 납치하는 대목이 나온다.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발생하는 부상병을 치료하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지바고는 부상병 앞에서 하소연한다. 의사만 데려다 놓는다고 부상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약도 없고 간호사도 없고 치료시설도 없어 제대로 된 치료가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장면이 기억나지 않는가. 닥터 지바고 뮤지컬이 나온 1900년대 초반에도 의사만 데려오면 환자 치료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100년 이후인 2012년 한국에서 이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복지부식 해법이라면 ‘공공간호 장학생’ 또한 매년 5000명 정도 더 뽑아야 한다.

정부는 한국의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통계를 제시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의사 외에 치과의사가 구강 관련 의료를 담당하고 있고 한의사들이 한방 진료를 하고 있다. 또 일선 약사들이 의사 처방이 필요 없는 일반의약품으로 사실상의 진료를 대체하는 투약행위를 하고 있기도 하다. 면밀히 검토한다면 한국의 의료인력은 현실적으로 이미 공급과잉이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의사 수 증가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부는 의사 수를 증원하면 인건비를 낮추고 경쟁이 심해져 의료 서비스가 더욱 좋아질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미 한국의 보건의료 역사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많은 의사가 배출돼도 지방에서는 산부인과 의사가 없어 임신부가 안전띠를 매고 몇 시간씩 차를 타고 산전 검진을 받으러 가는 것이 현실이다. 흉부외과 의사가 없어서 수술을 못하는 지역도 있다.

의사들을 비호하자는 것이 아니다. 의사 수를 늘려도 정작 국민이 원하는 서비스는 제공되지 않고 의료비 상승만 부추겨온 것이 현실이다. 보건경제학자뿐 아니라 정부 측 연구 결과도 무분별한 의사 증원은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학병원은 환자가 넘쳐 의사가 부족해 보이지만 일선 의원은 환자가 갈수록 줄고 있다. 의사를 더 만든다고 대학병원 대기시간이 감소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의사를 붕어빵처럼 찍어낸다고 해도 의료환경의 개선 없이 의료서비스가 획기적으로 좋아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양으로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전근대적 해법이다. 꼭 필요한 양질의 전문 서비스를 확충할 해법을 찾아야 한다. 배고픈 시절에 숫자로 때우던 정책은 더 이상 시장이 원하는 높은 수준의 질을 보장하지 못한다. 국민들에게 얼마나 양질의 전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이번 정책은 엄청난 혈세를 낭비하고 의료시스템을 왜곡시킬 수 있다. 공중보건 장학생을 국민의 세금으로 6년이나 지원·육성하는 것은 100년 앞을 내다보고 결정해야 할 문제다. 시설도 인력도 부족한 야전부대에 배치된 초임 군의관만 늘리는 꼴이다. 의료와 같이 10년 이상 그 여파가 지속되는 중대한 시스템은 소수의 정책 제안자가 결정할 사안은 아니다. 의료계 당사자들이 한데 모여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접점을 찾는 노력이 먼저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황지환 <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 >

△서울대의대 △서울대병원 피부과 전공의 △서울크리스탈피부과 대표원장 △대한피부과의사회 기획정책이사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