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 이태원동 해밀턴호텔 뒤 ‘세계음식문화거리’. 이곳에는 그리스 터키 멕시코 등 15개국의 전통음식을 판매하는 음식점 60여개가 늘어서 있다. 낮 12시까지는 한 시간이나 남은 ‘이른 시간’이었지만 식당마다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30석 규모의 이탈리아 식당 ‘올드스탠드’는 30~40대 한국인 주부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이숙희 씨(48·서울 잠원동)는 1주일에 두 번 이상 이태원을 찾는다. 그는 “예전에는 청담동이나 가로수길에서 모임을 가졌지만 아줌마들 사이에 ‘이태원이 괜찮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자주 온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날 식사를 마친 후 해밀턴호텔 건너편에 있는 ‘로데오패션거리’에서 쇼핑을 하고,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현대미술전을 관람했다. 이번 주말에는 뮤지컬·콘서트 전용극장 ‘블루스퀘어’에서 고등학생 딸과 함께 뮤지컬 ‘위키드’를 볼 계획이다.

과거 미군 기지촌이었던 이태원이 서울의 신(新)문화특구로 변신하고 있다. 이태원 하면 떠오르던 이미지는 낡은 상점과 유흥주점, 짝퉁 명품점 등이었으나 갤러리·패션숍·공연장·유명 음식점 등으로 최근 2~3년 새 빠르게 바뀌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미군이나 외국 단체관광객들이 쇼핑과 유흥을 위해 드나들던 이태원이 고급 복합문화 공간으로 변모한 셈이다.

리움미술관을 중심으로 각종 갤러리가 어우러져 ‘생활과 예술의 결합’을 강조하는 실용 성향의 ‘생활 예술가’들이 모여들고 공연장 블루스퀘어와 용산아트홀, 올해 말 완공 예정인 현대카드 공연장까지 들어서면서 ‘이태원이 서울의 문화·예술지도를 다시 그린다’는 말도 나온다. 뉴욕 맨해튼의 문화거리인 ‘소호’를 본떠 ‘서울판 소호’라는 별칭도 생겼다. 정경훈 이태원 관광특구연합회 사무국장은 “10년 전만 해도 외국인과 일부 젊은층만 찾는 ‘그들만의 공간’이었지만 최근 들어 남녀노소가 함께 올 수 있는 ‘가족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고 말했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서 한강진역 쪽으로 곧게 뻗은 700m 길인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 거리는 이태원 대변신의 선봉에 서 있다. 지난해 8월 명품 브랜드 꼼데가르송의 플래그십 스토어(대형 단독매장)가 문을 열면서 ‘꼼데길’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제일모직 쇼핑몰도 올해 말까지 한강진역 인근에 들어설 예정이다.

대기업들도 이태원 꼼데길의 변신에 힘을 보탰다. SPC그룹 본사와 제일기획 등은 이미 입주했고, 삼성생명과 농심도 꼼데길에 사무실을 둘 예정이다. SPC그룹은 꼼데가르송 바로 앞에 빵집과 레스토랑, 카페가 합쳐진 ‘패션 5(passion 5)’를 운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홍대 인근에 있던 생활 예술가들이 로데오패션거리에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전시해 놓고 커피나 간단한 디저트를 파는 ‘화랑카페’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로데오패션거리에 카페와 인테리어 사무실을 겸해 사용하고 있는 디자이너 문종길 씨(55)는 “서울 삼청동·홍대에 있는 금속공예가, 화가, 작가 등이 이태원으로 몰려들고 있다”며 “서울 강남의 가로수길을 뛰어넘는 새로운 문화거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우섭/이지훈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