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제도가 도입된 지 14년이 지났다. 하지만 우리 기업문화에서 이사회 제도의 효용성 논란이 아직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시점에 정부당국에서는 사외이사제도에 대한 평가와 개선작업을 진행 중이다.

사외이사제도에 대한 평가는 긍정론과 부정론이 함께 존재한다. 우리나라 기업지배구조와 투명경영에 상당히 기여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사외이사 무용론을 주장하는 극단적인 시각도 있다. 사외이사제는 그동안 많은 부분이 개선·보완되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정착단계에 들고 기업도 점차 익숙해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외이사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대규모 회사에서는 더 긍정적 반응인 반면 일부 중소규모 회사에서는 형식적 요건 충족에 급급해 제대로 활용이 안 되는 것 같다.

사외이사제도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이면에는 현실을 오해하는 데서 오는 부분도 적지 않다. 대부분 회사의 경우 이사회 의사록에 반대의사 표시가 없음을 근거로 사외이사가 거수기 역할로 전락했다는 일각의 지적이 있다. 이는 실제 이사회의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이사회 안건에 대해 대다수 회사에서는 경영진과 이사회 간 사전조율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며, 더욱이 중대하거나 문제의 소지가 있는 안건에 대하여는 이사회에서 충분한 협의를 통해 수정·가결되는 예가 많다. 또 협의가 충분치 않을 경우 안건을 보류하기도 하는데, 이런 과정들이 회의록 공시에는 자세하게 기재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일방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하기보다는 토의과정에서 설득·조정해 최종 경영의사 결정에 이르게 하는 우리 기업문화를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전직 관료 등을 대거 사외이사로 선임해 방패막이 또는 로비스트로 활용한다는 일부 언론 등의 지적이 있다. 그러나 실제 사외이사의 직업분포 통계를 보면 기업인, 교수, 변호사, 전직공무원, 회계사·세무사 등 순으로 나타나 전직 관료비중이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니다. 이들 중에는 기업의사 결정에 중요한 조언과 역할을 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들이 많아 이 역시 다소 과장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와 같이 사외이사제도에 대한 일부 비판적 시각은 제도운영 실상에 대한 오해와 과도한 사회적 기대감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사외이사제도는 우리 특유의 경제·사회적인 여건과 함께 기업의 지배구조가 회사의 역사, 문화, 관행, 규모, 업종 등 특성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잣대로 호·불호나 성패를 평가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또한 사외이사제도가 경영투명성을 위해서도 독자적으로 기능하기보다는 회사 내 다른 경영 감시·감독기구와 균형·조화가 이뤄지도록 운영돼야 한다. 즉 사외이사제도가 감사·감사위원회제도, 내부회계관리자제도, 준법지원인제도 등 다른 기관과 역할·기능이 중복되지 않게 조율되고 효율성을 도모함으로써 이사회의 감시·감독기능과 합리적인 경영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사외이사제도의 개선과 관련해 현재 자산 2조원 이상으로 되어 있는 대규모 상장법인에 적용하는 사외이사 선임비율 요건(사외이사를 3명 이상 선임하고 사외이사를 이사회의 과반수로 구성하도록 한 상법 및 시행령상의 요건)을 강화하기 위해 자산규모 요건을 1조원으로 하향하자는 의견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정착했다고 보기 어려운 사외이사제도를 조급히 확대·시행하는 것 역시 신중을 기해야 한다. 기업경영이 글로벌화와 함께 복잡·다양화되고 있고 관련법규가 강화돼 이사회 의결 사항이 더욱 늘어나는 상황이다. 이럴 때 기업들이 자기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사외이사들을 모아 이사회를 자주 개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오히려 자칫 신속한 의사결정 지연으로 경영에 심각한 지장을 가져올 수도 있다. 일방적으로 제도를 확대 적용하거나 강제하는 것보다는 성공한 기업사례를 토대로 우리나라 기업 실상에 부합하는 한국적 사외이사제도가 정립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서진석 <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상근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