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도 스마트폰 외엔 팔리는 제품이 없다.”(삼성 고위 관계자)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전자산업에도 글로벌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LCD(액정표시장치) TV 출하량이 사상 처음으로 줄어들기 시작했고, 한동안 반등 기미를 보였던 메모리 D램 가격도 상승세를 멈추는 등 완제품과 부품 분야 모두 부진한 양상이다.

휴대폰을 제외하면 이미 불황에 돌입했다는 우려가 전자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TV 기대가 사라졌다

TV는 전자제품 가운데 상대적으로 불황을 덜 타는 상품으로 꼽혀 왔다. 금융위기의 영향을 받았던 2009년에도 세계 TV 판매량은 2억1083만대로 2008년 2억622만대를 깨고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올해도 경기가 좋지 않지만 유로2012와 런던올림픽 등에 힘입어 수요가 살아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의 통계는 낙관적 예측과는 거리가 멀었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디스플레이서치는 올 1분기 글로벌 TV 출하량이 8% 감소해 분기 단위로는 2009년 2분기 이후 가장 큰폭으로 감소했다고 20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올 1분기 출하량은 5122만대로 지난해 1분기(5554만대)에 비해 432만대나 줄었다.

특히 LCD TV가 출시 이후 처음으로 판매가 감소(3%)한 것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폴 가농 디스플레이서치 연구책임자는 “올 들어 LCD패널 값이 반등하자 TV 업체들이 TV 값을 올렸다”며 “이 때문에 불황으로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이 구매를 줄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디스플레이서치는 이에 따라 TV 출하량 예측치를 낮추고 있다. 지난해 12월엔 올 2분기 출하량이 5631만대에 이를 것으로 봤으나, 이날 발표한 자료에선 5357만대로 4.9% 줄여 잡았다.

박강호 대신증권 테크팀장은 “런던올림픽 수요가 예상만큼 강하지 않다”며 “TV는 교체 주기가 긴 아이템이어서 2009년 LED(발광다이오드) TV가 나온 뒤 이를 구매한 사람들이 스마트TV나 3DTV 등으로 바꾸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 1위인 삼성전자의 경우 1분기 TV 매출액이 고가모델 판매 증가로 소폭 늘었다.

반도체 등 부품도 불황

TV, PC 등 완제품이 팔리지 않자 전자부품도 불황을 타기 시작했다.

일본 엘피다 파산의 영향으로 지난 2월부터 4개월간 32.9% 뛰었던 D램 값은 한 달째 상승세를 멈췄다.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주력 D램 제품(DDR3 2Gb 256M×8 1333㎒)의 이달 상반기 고정거래가격은 지난 5월23일 이후 1.17달러를 유지하고 있다. PC 수요가 살아나고 있지 않아서다.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D램이 올랐던 것은 엘피다 구조조정 등으로 공급이 줄었던 덕분”이라며 “유럽이 어려워져 더 이상 오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분야 시장조사업체인 가트너는 지난해 3분기 발표한 보고서에서 올해 글로벌 PC 수요를 4억3941만대로 전년보다 10.9%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지난 1분기에는 이 예상치를 3억6822만대로 낮췄다. 지난해보다 수요가 더 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삼성그룹 전자계열사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삼성전자의 완제품 판매 동향을 보면 갤럭시S3 외엔 판매가 꺾이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잘나가는 것 같지만 스마트폰 때문에 생긴 착시 현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계열사의 고위 관계자도 “일부 휴대폰 관련 제품 빼고는 모든 부품이 다 힘들어졌다”며 “우리가 장사를 잘해서 버티는 게 아니라 경쟁사들이 더 힘드니까 버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