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대구 역전광장에는 노인 여자 아이 절름발이 등이 초라하게 무리를 지어 다음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아무도 열차가 언제 도착할지, 또 열차편이 있기나 한지 장담하지 못한다. 나는 군용열차에 올라 부산으로 향했다. 하지만 딱한 눈길로 나를 좇던 그 불행한 사람들을 쉽게 머리에서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우리 이야기를 타인에게 듣는 기분은 묘하다. 그 대상이 한국 현대사를 피로 물들인 6·25전쟁이라면 얘기는 더 심각해진다. 지난 60여년간 흑백사진 속에 가둬뒀던 6·25전쟁, 그 먹먹한 이름이 되살아 돌아왔다.

《한국전쟁통신》은 프랑스 종군기자 4명이 쓴 전쟁 취재기다. AFP 소속 필리프 도디, 장 마리 드 프레몽빌, 앙리 드 튀렌 기자와 세르주 브롱베르제 르피가로 특파원이 썼다.

그들은 1950년 6·25전쟁 발발 이후 북한군에 밀리던 전선부터 차례로 투입됐다. 뿔뿔이 흩어져서 한반도의 2만㎞를 뛰어다니며 보고 들었던 기록을 모아 엮었다. 중공군 개입과 1·4후퇴, 1951년 3월 서울 재탈환까지 한반도의 운명을 뒤흔든 기록들이 생생하다.

기존에 외국인이 펴낸 6·25전쟁 책들이 미국의 시선에서 쓰여진 데 비해 이 책의 시각은 좀 다르다. “유엔군은 한국에서 고생하지 않으려고 야포 장갑차 차량 등 물량 공세를 해 왔다. 그런데 이런 것은 정글이 있는 나라에서라면 먹혔을지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월등한 장비 때문에 길바닥에서 포로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위험하다. 이것이 미군이 저지른 모순이다.”

저자는 숲이 우거져 자연적 은신처가 넘치는 한반도에서는 보병전을 해야 이길 수 있는데 포병 및 근접 항공 지원이 초래한 전술 때문에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당시 평양 시민들의 생생한 증언도 현장감을 더한다. 고 이휘영 서울대 교수의 친형인 리휘창 씨는 “(북한의 총선) 투표장 앞에 당선자를 알리는 벽보가 나붙었다. 그 수치는 이튿날 공고됐지만 온 나라의 전체적 결과로서 90% 이상이 노동당을 찍었다고 집계됐다. 투표함 속에 미리 들어 있던 것과 일치할 테니…”라고 회상했다.

당시 종군기자들은 6·25전쟁에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특파원 17명이 사망했고 3명은 포로로 잡혀 갔으며, 수십명이 다쳤다. 책을 쓴 장 마리 프레몽빌도 취재 중 북한군의 총격으로 순직했다.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쓴 이 기록을 허투로 넘기지 못하는 이유다.

이 책은 세르주 브롱베르제가 한데 묶어 1951년 파리에서 출간한 것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첫 출간 당시 6·25전쟁의 실상을 가장 먼저 전 세계 독자들에게 알린 공로로 그해 가장 뛰어난 기록문학에 주는 ‘알베르 롱드르상’을 받았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