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간이 없어요. 전화 끊습니다.”

아무 말도 못했다. 19일 오전 신분을 밝히고 “개정 상법에 궁금한 게 있어 연락드렸는데요”라고 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전화를 받은 법무부 A검사는 기자 질문과 상관없는 말을 몇 분간 하더니 “바쁘다”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부쩍 친절해진 다른 공무원들과 달리 기자 이름이나 휴대폰 번호를 되묻지도 않았다. 당연히 콜백도 없었다.

하루 전 그의 모습과는 180도 달랐다. 법무부 상법 담당인 A검사는 지난 18일 서울 팔래스호텔에서 대기업 법무실장들에게 개정 상법을 설명했다. 지난 4월15일부터 시행된 개정 상법을 적용하고 있는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향후 법 개정에 참고하기 위해서였다.

A검사는 사례를 곁들여가며 친절하게 법령을 소개했다. 법무부가 2005년 상법 개정에 나선 지 6년 만에 내놓은 수작이라 칭할 만큼 미리 받아 놓은 질문에도 자신있게 답변했다. 지난 4월 개정 상법이 발효될 때 권재진 법무부 장관이 “기업 환경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자평하던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법무부는 투명성 제고 차원에서 이사회 승인 대상에 포함되는 ‘이사의 자기 거래’ 대상을 확대하면서 결과적으로 자본금 10억원 미만의 회사를 법 적용 대상에서 빠뜨렸다. 기업의 이사회 승인 요건을 ‘재적 이사 3분의 2 찬성’으로 하면서 자본금 10억원 미만 회사는 이사를 1명만 둘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자본금이 적은 회사들은 계열사 간 거래가 있을 때마다 상법 상 주주총회 특별결의 요건인 ‘주주 3분의 2이상 동의’를 충족시켜야 한다. 이사회만 열면 되는 대기업보다 훨씬 강한 규제를 받게 된 셈이다.

이 부분에 대해 A검사는 “입법적 공백 상태가 발생해 보완해야할 부분”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듯 담담해 보였다.

검사들이 18번처럼 얘기하는 ‘10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선 안 된다’는 형사재판의 정신. 기업에 적용하는 상법은 예외인가. 자본금 10억원 미만 회사가 전체 중소기업의 25%가 넘는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정인설 산업부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