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여·야의 경쟁 구도가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사실 대권 경쟁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얼마나 경쟁적인가? 나는 남다르고 특별한 존재여야 하고,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비로소 나의 정체성을 찾는다. 사실 권력은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버리고 타인의 연약함 속에 들어가거나 타인의 아픔을 같이 경험하고 온전히 공유하는 것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권력투쟁에서 최후의 1인으로 살아남아야 하고, 이를 위한 전략·전술에도 능해야 하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차기 권력을 위임받을 자도 마찬가지일까?

다른 사람들과 세상을 위해 일하려는 그들,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고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 그들이 절차적 정당성을 고려할 여유도 없이 지나치게 경쟁적이라면, 자기중심적 권력의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강렬한 소명으로 착각한다면 어찌될까. 또 사상적 강박관념과 이론적 편견을 걷어내지 못하고 사람들을 상하나 적대 관계로만 규정짓는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대한민국은 지도자복을 받지 못했다고 탄식할 수밖에 없다.

물론 권력에 관한 문제들이 단지 올바른 지도자를 뽑는다고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시대의 변화를 주도하는 첫걸음인 것은 분명하다. 제도적 구조 자체에 내재해 있는 파괴적인 힘을 창조적인 능력으로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의 가치를 회복하는 일이다. ‘창조적 권력’은 사람들을 적과 친구로 양분하는 ‘우적이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나의 지식과 배경, 축적물과 소유에 매달리고 싶은 안전욕구, 그 속에 숨어 있는 태생적 보수주의를 조용히 배격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지배하고 관계를 무너뜨리는 파괴적인 힘은 어떠한가? 최고의 것을 쟁취하고 소유해야 할 뿐이다. 뿐만 아니라 반드시 정복해야 하는 강렬한 욕망, 권력의 본질에 끈질기게 붙어있는 ‘오만’이라는 죄는 궁극적으로 신이 되려는 무모함까지 감수한다. 그러나 무절제한 욕망의 끝은 죽음보다 잔혹하다. 사실 권력의 무상함은 말로 무엇하리요. 그 추상 같던 사람들의 비참한 말로를 지켜보는 것은 법조인의 일상이기도 하다.

나는 우리나라에 진정한 리더십, 특히 존경받는 정치 지도자의 출현을 갈망해 본다. 그 어느 때보다 시대적 사명이 크고 무거운 이번 대선에는 더 큰 갈망을 품는다. 죽음을 넘는 생명, 속박을 대신하는 자유, 강제도 통제도 이루지 못했던 진정한 변화를 가져다 줄 창조적 권력, 바로 그 속성을 갖춘 리더십의 표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무한한 권력투쟁의 최후 승자만은 아닐 것이다. 시대적 통찰력을 갖춘 사람, 진솔하게 국민을 섬겨 줄 사람, 무엇보다 최고의 선택과 결단을 위해 국민을 한마음으로 모을 사람, 바로 그 사람의 등장을 위해 오늘도 기도한다.

이은경 <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eklee@sanjilaw.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