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교육팀 선배 흠모하던 金 사원, 연수 마지막날 "선배님 사랑합니다"
전자업체 사원 도모씨는 3년 전 신입사원 연수를 통해 회사 전체에서 통하는 별명 하나를 얻었다. 도씨는 자기 몸 하나는 족히 들어갈 만한 대형 여행용 가방을 들고 연수원에 왔다. 그 안에는 다양한 생필품과 함께 수십장의 수건이 들어 있었다. “한번 닦은 수건을 두 번 쓸 수는 없잖아요.” 한 달 가까운 연수 기간 중 매일 갈아 쓸 분량의 수건을 챙겨왔던 것. 연수기간 내내 그는 ‘수건녀’로 유명세를 탔고, 그 뒤에도 사내에서 이 별명으로 통했다.

대학 여름방학을 맞는 요즘은 기업들의 신입사원 연수 시즌이기도 하다. 짧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몇 달까지 한 공간에서 섞여 지내다 보니 이런저런 사건사고가 많은 게 신입사원 연수다. 핑크빛 스캔들에서 감동의 깜짝 생일파티까지, 신입사원 연수에 얽힌 에피소드를 모아본다.

○연수는 사랑을 싣고

모 식품회사의 상반기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남자직원 정씨는 연수를 담당하는 교육팀의 여직원 오 대리를 짝사랑하게 됐다. 어려운 연수과정에 서 늘 따뜻하게 대해주는 여자 선배 오 대리에게 ‘확 끌리게’ 됐지만, 피교육생의 신분상 감정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타 오르는 사랑의 마음을 더 이상 참기 힘들게 된 정씨는 연수 동기들과 작전을 짰다. 오 대리를 연수원 뒤 편으로 불러낸 뒤 오 대리가 나타나자 동기들은 잔잔한 노래를 부르고 정씨는 준비한 편지를 건네며 마음을 고백했다. 결과는 해피엔딩. 이후 둘은 급속히 가까워져 결혼에 골인했다. 연수원에서 교육 담당자와 피교육생이 결혼한 첫 사례로, 이 식품 회사의 전설이 됐다.

한 자동차 업체의 신입사원 연수에는 조별로 미래 자동차 컨셉트를 정하고, 진흙으로 이를 빚어 발표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김씨는 큰 맘 먹고, 자기조의 대표 발표자를 자청하고 나섰다. 그는 자동차 컨셉트를 설명한 후, 끝으로 밝히고 싶은 것이 있다며 연수 첫날 첫눈에 반한 동기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며 공개 프러포즈를 했다. 행사장에 있던 다른 신입사원들이 열광적으로 “사귀어라! 사귀어라!”를 외치며 그녀의 반응을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No’였다. “만인 앞에서 고백도 거절당하고 상사들에게도 너무 튄다고 찍히게 됐고…. 그때 ‘오버’를 지금도 후회하고 있습니다.”

○삼성그룹 생일파티의 전통

삼성그룹 신입사원 연수에서는 연수기간 중 생일을 맞은 사원들에게 깜짝 파티를 해주는 전통이 있다. 2년간 취업준비 끝에 삼성그룹 계열사에 입사한 신씨는 신입사원 연수를 앞두고 들떴다. 그러나 기대도 잠깐. 연수 기간은 그에게 악몽이었다. 강연 중 잠깐 졸다가 지적을 받았고, 조 대표로 한 프레젠테이션에서도 ‘버벅’댔다. 결정적인 순간은 마지막 날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였다. 한 임원이 그를 호명해 일으켜 세우더니 “여러 프로그램에서 신씨에 대한 지적을 많이 들었다. 물론 아직 서툰 것은 알겠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회사와 좀 안 맞는 것 같다”며 신입사원에게는 ‘사형 선고’와 같은 비판을 한 것. 눈앞이 캄캄해지며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찰나 갑자기 정전이 되며 주변이 깜깜해졌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한 무리의 동기들이 케이크에 초를 꽂고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등장했다. 깜짝 파티를 위해 연수기간 내내 그를 집중적으로 깼던 것이다. 신 사원은 결국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생일 주인공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신입사원 전체를 속이는 경우도 있다. ROTC(학군장교) 출신들로만 이뤄졌던 신입 기수의 생일파티는 아직도 삼성그룹 연수의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연수를 진행하던 교육팀 직원들이 연수생 전원을 강당에 집합시킨 뒤, 지금 전쟁이 발발해 모두 부대로 복귀해야 한다며 긴급 귀대 명령을 내렸다. 당황할 틈도 없었다. 연수원 마당에는 군용 지프차와 트럭, 군복, 군장 등이 완비돼 있었다. 부리나케 군복으로 갈아입고 차에 탄 신입사원들은 ‘전쟁’이라는 말에 말을 잃고 있었다. “출발 직전이 돼서야 생일파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군복에 차까지 동원했으니 당할 재간이 있나요. 지금도 동기들끼리 술자리에서 그때 얘기는 꼭 하게 됩니다.”

○‘내가 이 짓하려고 들어왔나’

삼성에버랜드 K 과장은 신입사원 연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난다. 에버랜드 테마파크의 다양한 업무를 경험해 봐야 하는데, 그 중에는 캐릭터 분장도 있었다. 동물 인형을 뒤집어 쓰고 놀이공원 전역을 돌면서 고객들에게 재롱을 피우는 일이다. 그도 어린 시절 테마파크에 놀러가 캐릭터 인형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던 기억이 있지만, 회사 직원이 탈을 쓰고 다니는 줄은 전혀 몰랐다. 찜 통같은 더위도 고역이었지만 고객들을 상대하는 일은 그 이상이었다.

머리가 굵은 초등학교 고학년 남자 어린이들 중에서는 동물 캐릭터 인형을 보면 일단 때리고 보는 애들이 적지 않다. 멀리서 전력으로 달려와 ‘이단 옆차기’를 날리는 녀석들도 있다. 주먹을 부르르 떨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다. 방긋방긋 웃는 표정을 지으며(원래 그 표정이지만), 타이르는 수밖에. 어린 아이들이 지나가면 다가가서 손을 흔들며 친한 척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물인형이 커다란 눈망울로 다가오면 울음부터 터뜨리는 아기들도 많다. 이때 달래주려 하다간 역효과만 날 뿐이다. “왜 멀쩡한 애들을 울리냐”며 타박하는 엄마들이 적지 않다. 그럴때는 무조건 미안한 척하며 바로 자리를 떠야 한다.

○“연수도 재수하니까 할 만하지”

유통업체 정 과장은 신입사원 연수 시절 동기회장을 맡았다. 그런데 유독 말이 없던 동기 한 명이 있어 늘 마음에 걸렸다. 그 동기는 쉬는 시간이 돼도 남들과 어울리지 않고 말없이 컴퓨터실로 향했다. 취침시간에도 남들이 잘 때까지 기다린 후 조용해 지면 홀로 컴퓨터실로 향했다. 수상하게 생각한 정 과장은 밤에 몰래 컴퓨터실을 습격했는데…. 그 동기는 매일 밤 다른 회사 공채에 지원서를 넣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회사에 추가 합격을 하고는, 그제서야 동기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곤 유유히 사라졌다. “회사도 보험으로 다니는 걸 보니 부럽군.”

정 과장의 동기생이 겪었을 법한 에피소드. S씨는 한 대기업체 수습사원 연수 과정에서 극기훈련으로 온갖 체험을 했다. 훈련이 혹독한 만큼 무서운 교관이 기억에 남았다. S씨는 7개월 정도 지난 후 적성에 안 맞아 다른 기업에 입사했다. 그 기업 역시 신입사원 연수에서 극기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관 역시 이전 직장에서의 바로 그 사람이다. ‘빡세게’ 극기 훈련을 마친 후 그 교관 왈, “두 번째 하니까 할 만하지 않았냐.” 자신을 알아본 그 말투가 썩 유쾌하게 들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강영연/고경봉/윤정현/김일규/정소람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