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시에서는 신신체육용품처럼 중국의 떼법에 당하는 한국 기업들의 얘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삼성전자에 부품을 공급하는 A전자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지방 정부 때문에 임대료를 이중으로 부담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 8월 지방 정부로부터 공장부지가 재개발지역에 포함됐으니 이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물론 적절한 보상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A전자는 흔쾌히 동의하고 칭다오시 외곽에 새 공장 터를 임대했다. 그러자 지방 정부는 A사에 당장은 줄 돈이 없다며 보상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결국 A전자는 보상금을 받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 이사도 못했다. 현 공장 임대료에 새 공장 터 임대료까지 내는 힘든 처지가 됐다.

산둥성 남쪽에 있는 텅저우(藤州). 이곳에서도 한 한국 기업이 곤란을 겪고 있었다. 이 회사는 시 정부와 토지 임대계약을 맺었지만 현지 주민들이 가격이 너무 싸다며 반대 시위를 하고 있어 공장을 짓지 못하고 있다. 계약을 한 텅저우시 정부는 주민들의 시위가 벌어지자 오히려 회사 측에 “잘 해결해 달라”며 책임을 미루고 있다.

외자기업과 지방 정부 및 주민들과의 갈등은 △중국 정부의 외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고 △주민들의 권리 의식이 높아진 데다 △급속한 도시화 등으로 환경이 바뀌었다는 점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박한진 KOTRA 베이징무역관 부관장은 “중국이 외자를 우대해주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며 “첨단산업이 아닌 업종에 대해서는 도시 밖, 심지어는 중국 밖으로 나가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광둥성 우칸(烏坎)촌 사건은 중국 촌민들의 권리의식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우칸촌 서기는 집체토지(마을이 공동으로 소유한 토지)를 개발업자에게 싼값에 팔아넘겼다가 촌민들의 반발로 결국 처벌됐다. 공동 소유 토지에서 발생한 수익은 주민에게 분배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에 의해 정문이 봉쇄당한 신신체육용품이 입주해 있는 칭다오시 중한서취(中韓社區)의 경우 약 2700명의 촌민들이 1인당 매월 수백위안의 임대료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당연히 더 많은 수입을 원하기 때문에 장기계약으로 저렴한 임대료를 내는 신신체육용품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게 현지 한인들의 설명이다.

올해 18차 공산당 대회를 앞두고 관료들이 복지부동하고 있는 것도 주민들의 불법 행동이 방조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이평복 KOTRA 칭다오무역관 고문은 “지금 중국의 최고 가치는 모두가 갈등 없이 잘 사는 허셰(和諧)”라며 “그래서 정부는 무슨 문제가 발생하든 당사자들이 협의로 끝내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많은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타깃이 돼 위기를 맞고 있지만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고 대부분 굴복한다는 것이다. 베이징의 한 기업인은 “영사관에 문제를 의뢰했다가 조용히 해결하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실망스러워했다.

현재 주중 한국대사관은 중국 상무부와 공안 등을 통해 신신체육용품의 불법 점거 사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중국 관료들은 “술 한잔 먹으며 해결해도 될 일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 관계자가 전했다.

김덕현 덕현법률사무소 상임고문은 “정부가 교민이든 기업이든 정당한 권리가 침해당했을 경우 조용히 넘어가지 않는다는 원칙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며 “신신체육용품에 떼법이 통했다는 선례를 남기면 다른 한국 기업들도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다”고 말했다.

칭다오·베이징=김태완 특파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