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혼자 사는 전모씨(54·경기도 성남). 최근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근로장려금(EITC)을 신청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하지만 막상 세무서에 알아 보니 “1인 가구는 신청 대상이 아니다”는 말만 들었다. 그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데 둘이 살면 지원금을 주고 혼자 살면 안 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부가 2009년부터 빈곤층의 근로 의욕을 높이기 위해 근로장려금을 주고 있지만 1인 가구는 아예 대상에서 빠져 있다. 18세 미만 자녀나 배우자가 없으면 아예 신청 자격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근로장려금은 정부가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는 ‘일하는 복지’의 핵심 정책이다. 올해부터는 한 해 지원금 상한선을 12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높였다.

문제는 빈곤층 대다수가 1인 가구라는 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4일 국무총리실에 보고한 ‘빈곤층 실태 추이와 향후 정책 방향’을 보면 빈곤층 190만가구 중 60%에 달하는 114만가구가 ‘나홀로 가구’다. 국내 전체 1인 가구(416만가구)의 27%에 해당한다. 이 중 53만4000가구는 소득이 최저생계비(1인 가구 기준 월 55만원가량)에도 못 미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61만2000가구는 최저생계비 수준(120% 이하)인 차상위 계층이다.

게다가 1인 가구는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총 가구는 2010년 1735만9000가구에서 2035년 2226만1000가구로 늘어난다. 이 가운데 1인 가구는 416만가구(전체의 24%)에서 763만가구(34.3%)로 연평균 13만9000가구씩 증가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이에 따라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1인 빈곤층 가구를 위해 제도적 보완을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근로장려금 신청 자격에 1인 가구를 포함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 따라 조만간 기획재정부와 협의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근로장려금은 일을 하지 않으면서 기초생활보장 제도에 의지하려는 빈곤층을 일터로 보낼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라며 “1인 가구를 배제함으로써 이 수단을 제대로 못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멍 뚫린 ‘일하는 복지’

하지만 근로장려금 주무부처인 재정부는 일단 난색을 표하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정책은 우선 순위의 문제”라며 “혼자 사는 빈곤층보다 자녀나 배우자가 있는 빈곤층 지원이 먼저”라고 말했다.

오는 7~8월 중 발표할 소득세법 개정안에도 1인 가구를 근로장려금 지원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은 배제할 방침이다. 그는 “1인 가구 중에는 혼자 사는 대학생도 포함되는데 젊은 사람들까지 지원하는 게 맞는지, 늘어나는 재원은 어떻게 감당할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근로장려금을 받은 가구는 52만2000가구, 이들에게 지급한 금액은 4020억원이었다. 시행 첫해인 2009년에 비해 가구 수는 11.7%, 지급액은 11.4% 줄었다.

올해는 지원금 한도가 12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높아졌고 자녀가 없는 부부 가구도 새로 신청 대상에 포함돼 예산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게 재정부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제도 개선을 마냥 미룰 수 없다는 지적이다. 미국 영국 등 우리보다 앞서 근로장려금 제도를 도입한 선진국들은 1인 가구도 지원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최현수 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1인 가구를 지원 대상에 포함하되 신청자의 소득 요건을 강화하고 지급액을 줄이면 된다”며 “제도를 정교하게 짜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와 예산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근로장려금을 가장 적게 받는 무자녀 부부 가구의 경우 부부 합산 연소득이 1300만원 미만이어야 한다. 근로장려금 지원액은 소득액에 따라 최대 70만원이다. 1인 가구에 대해선 이보다 소득기준과 지원금을 낮추면 된다는 것이다.

최 부연구위원은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서는 “고소득층과 중산층 이상에게만 혜택이 집중되는 비과세 감면 혜택을 축소하면 빈곤층을 지원하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 근로장려금(EITC)

earned income tax credit. 일하는 빈곤층에 주는 지원금. 빈곤층의 근로의욕을 높이기 위해 2009년부터 지급됐다. 매년 소득·부양자녀·주택·재산 등의 요건을 따져 국세청이 가구당 최대 200만원을 지원한다. 자녀나 배우자가 있어야 신청할 수 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