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유럽 슈퍼리치들은 과연 어디에 투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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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위기 후 '예술품' 선호
최근 국부유출 가담 대책 필요
최근 국부유출 가담 대책 필요
유럽위기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단일 위기로 가장 긴 2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만큼 일반인들이 궁금해하는 것도 많다. 그 중 하나가 유럽의 슈퍼리치들은 이런 위기 속에서 과연 돈을 어디에 투자하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
재정위기가 시작되면서 부분적으로 나타났던 그리스의 예금 인출이 인접국으로 확산되는 ‘뱅크런 도미노’ 현상이 발생하자 독일이 주도가 돼 스페인에 조건없는 구제금융까지 주면서 사태 진화에 나섰다. 이로 인해 먼저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 아일랜드 등은 조건 완화, 앞으로 받을 가능성이 있는 이탈리아 등의 일부 국민들은 조건없는 구제금융을 요구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인출된 돈의 소유자는 대부분 유럽의 슈퍼리치들이다. 최근에 인출된 돈일수록 그렇다. 20세기 초 이후 인플레이션에 대한 ‘낙인 효과(stigma effect)’와 1990년대 이후 대중적인 유럽식 복지정책 추진으로 중하위 계층들은 저축할 유인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이들 계층의 저축률은 선진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유럽 슈퍼리치들의 투자성향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보수적’이라는 점이다. 같은 여건이라면 투자의 3원칙에서 안정성과 환금성을 수익성보다 중시한다. 레버리지(증거금 대비 총투자 가능금액)와 파생상품 투자 등은 최대한 자제한다. 이런 성향은 위기 때일수록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투자 범위도 ‘국수적’이다. 직접 투자할 경우 유럽통합 이전에는 자국 이외의 국가에 투자하는 것을 꺼렸다. 유로화가 일상생활에 사용되기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이 원칙은 크게 흐트러지지 않았다. 최근에 와서야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운용하는 간접 투자를 통해 글로벌 투자를 서서히 늘려왔을 뿐이다.
중하위 계층과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 유럽의 슈퍼리치들 사이에는 투자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물가 공포증(inflaphobia: inflation+phobia)’이 늘 배어 있다. 이 때문에 투자 대상을 선택할 때는 인플레이션을 방지할 수 있는 물가연동국채 등을 우선적으로 고르는 성향이 있다.
유럽 슈퍼리치들이 중시하는 이런 세 가지 성향에 가장 잘 맞는 투자 대상은 예술품이다. 동유럽 위기가 발생했을 때도 예술품 투자가 활발했다. 심지어는 전쟁을 치르는 기간에도 예술품이 거래되는 시장만큼은 위축되지 않았다. 그리스 위기가 발생한 이후 유럽 슈퍼리치들은 예술품을 꾸준히 사들였고, 가격도 올라갔다.
예술품보다는 못 하지만, ‘골드 뱅킹’도 유럽 슈퍼리치들이 선호하는 투자 대상이다. 골드뱅킹이란 금융회사들이 금 및 금 관련 파생금융상품을 고객을 상대로 팔고 사는 행위를 말한다. 특징적인 것은 미국은 금 관련 파생상품 위주로 거래되는데 비해, 전통적으로 귀금속 세공업이 발달한 유럽에서는 금을 빌려주는 금 대여가 활성화됐다는 점이다.
아시아 지역에서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과 중국, 인도에서 금계좌와 금대여 상품을 중심으로 골드뱅킹이 비교적 활성화되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은 선진국은 고사하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서도 골드뱅킹을 도입한 시기가 늦었고, 목적도 달랐다. 2004년 7월이 돼서야 비로소 정책당국이 그동안 밀수 금 위주로 운영돼온 국내 금시장의 구조를 탈피하고 지하경제를 양성화할 목적으로 시중은행에 골드뱅킹을 허용했다.
미국 정부가 4년 전의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각종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이른바 ‘볼커 룰(Volker’s rule)’을 실시한 이후에 선진국의 슈퍼리치들은 금을 직접 보유하는 경향이 높아졌다. 유럽 슈퍼리치들의 이런 성향은 과거보다 더 높아졌다. 그리스 위기 이후 재테크용 금 시장에서 유럽의 비중이 높아진 것은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독일 국채와 스위스 프랑화도 그리스 위기 이후 유럽 슈퍼리치들 사이에서 꾸준히 인기를 끄는 투자 대상이다. ‘스펙시트(Spexit:스페인의 유로존 이탈)’ 우려가 나오자 독일의 국채수익률은 사상 최저치인 연 1.2%대까지 떨어졌다.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스위스 프랑화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초강세 국면이 지속됐다.
하지만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 조치 이후 위기가 독일까지 전염될 우려가 제기되면서 유럽의 슈퍼리치들은 미국 국채를 더 선호하기 시작했다. 미국 국채수익률은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벌써부터 차기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세계 경제와 국제 금융시장을 언제든지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위기후보지)’로 미국 국채시장에 낀 거품을 지목할 정도다.
이는 유럽위기가 제때 해결되지 않고 장기간 지속됨에 따라 유럽의 슈퍼리치들이 마침내 다른 국가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중앙은행과 함께 민간 차원에서 위기 극복의 ‘최후 보루(last resort)’ 역할을 해야 할 슈퍼리치들이 국부 유출에 가담한다면, 유럽위기의 해결은 지금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하루 빨리 유럽위기가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재정위기가 시작되면서 부분적으로 나타났던 그리스의 예금 인출이 인접국으로 확산되는 ‘뱅크런 도미노’ 현상이 발생하자 독일이 주도가 돼 스페인에 조건없는 구제금융까지 주면서 사태 진화에 나섰다. 이로 인해 먼저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 아일랜드 등은 조건 완화, 앞으로 받을 가능성이 있는 이탈리아 등의 일부 국민들은 조건없는 구제금융을 요구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인출된 돈의 소유자는 대부분 유럽의 슈퍼리치들이다. 최근에 인출된 돈일수록 그렇다. 20세기 초 이후 인플레이션에 대한 ‘낙인 효과(stigma effect)’와 1990년대 이후 대중적인 유럽식 복지정책 추진으로 중하위 계층들은 저축할 유인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이들 계층의 저축률은 선진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유럽 슈퍼리치들의 투자성향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보수적’이라는 점이다. 같은 여건이라면 투자의 3원칙에서 안정성과 환금성을 수익성보다 중시한다. 레버리지(증거금 대비 총투자 가능금액)와 파생상품 투자 등은 최대한 자제한다. 이런 성향은 위기 때일수록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투자 범위도 ‘국수적’이다. 직접 투자할 경우 유럽통합 이전에는 자국 이외의 국가에 투자하는 것을 꺼렸다. 유로화가 일상생활에 사용되기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이 원칙은 크게 흐트러지지 않았다. 최근에 와서야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운용하는 간접 투자를 통해 글로벌 투자를 서서히 늘려왔을 뿐이다.
중하위 계층과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 유럽의 슈퍼리치들 사이에는 투자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물가 공포증(inflaphobia: inflation+phobia)’이 늘 배어 있다. 이 때문에 투자 대상을 선택할 때는 인플레이션을 방지할 수 있는 물가연동국채 등을 우선적으로 고르는 성향이 있다.
유럽 슈퍼리치들이 중시하는 이런 세 가지 성향에 가장 잘 맞는 투자 대상은 예술품이다. 동유럽 위기가 발생했을 때도 예술품 투자가 활발했다. 심지어는 전쟁을 치르는 기간에도 예술품이 거래되는 시장만큼은 위축되지 않았다. 그리스 위기가 발생한 이후 유럽 슈퍼리치들은 예술품을 꾸준히 사들였고, 가격도 올라갔다.
예술품보다는 못 하지만, ‘골드 뱅킹’도 유럽 슈퍼리치들이 선호하는 투자 대상이다. 골드뱅킹이란 금융회사들이 금 및 금 관련 파생금융상품을 고객을 상대로 팔고 사는 행위를 말한다. 특징적인 것은 미국은 금 관련 파생상품 위주로 거래되는데 비해, 전통적으로 귀금속 세공업이 발달한 유럽에서는 금을 빌려주는 금 대여가 활성화됐다는 점이다.
아시아 지역에서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과 중국, 인도에서 금계좌와 금대여 상품을 중심으로 골드뱅킹이 비교적 활성화되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은 선진국은 고사하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서도 골드뱅킹을 도입한 시기가 늦었고, 목적도 달랐다. 2004년 7월이 돼서야 비로소 정책당국이 그동안 밀수 금 위주로 운영돼온 국내 금시장의 구조를 탈피하고 지하경제를 양성화할 목적으로 시중은행에 골드뱅킹을 허용했다.
미국 정부가 4년 전의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각종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이른바 ‘볼커 룰(Volker’s rule)’을 실시한 이후에 선진국의 슈퍼리치들은 금을 직접 보유하는 경향이 높아졌다. 유럽 슈퍼리치들의 이런 성향은 과거보다 더 높아졌다. 그리스 위기 이후 재테크용 금 시장에서 유럽의 비중이 높아진 것은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독일 국채와 스위스 프랑화도 그리스 위기 이후 유럽 슈퍼리치들 사이에서 꾸준히 인기를 끄는 투자 대상이다. ‘스펙시트(Spexit:스페인의 유로존 이탈)’ 우려가 나오자 독일의 국채수익률은 사상 최저치인 연 1.2%대까지 떨어졌다.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스위스 프랑화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초강세 국면이 지속됐다.
하지만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 조치 이후 위기가 독일까지 전염될 우려가 제기되면서 유럽의 슈퍼리치들은 미국 국채를 더 선호하기 시작했다. 미국 국채수익률은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벌써부터 차기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세계 경제와 국제 금융시장을 언제든지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위기후보지)’로 미국 국채시장에 낀 거품을 지목할 정도다.
이는 유럽위기가 제때 해결되지 않고 장기간 지속됨에 따라 유럽의 슈퍼리치들이 마침내 다른 국가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중앙은행과 함께 민간 차원에서 위기 극복의 ‘최후 보루(last resort)’ 역할을 해야 할 슈퍼리치들이 국부 유출에 가담한다면, 유럽위기의 해결은 지금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하루 빨리 유럽위기가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