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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 가봐야 찾을 돈 없어…총선요? 아무 기대도 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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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대기로 선 그리스 - 그리스 2차 총선 현지 르포] (1)폭풍전야 (2)운명의 날 (3)선택 이후

    최고 번화가도 썰렁
    건물엔 '임대 중' 표지판…상인들 "관광객 30% 줄어"

    길 옆에 버려진 차 수두룩
    7층짜리 상가건물 텅 비어…"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어"
    "은행 가봐야 찾을 돈 없어…총선요? 아무 기대도 안합니다"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이라고요? 허허 남의 일입니다. 그나마 몇푼 안되는 예금 깨버린 게 언제인데요. 은행에 가봐야 찾을 돈도 없습니다.”

    "은행 가봐야 찾을 돈 없어…총선요? 아무 기대도 안합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저녁 그리스 아테네 외곽에 있는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공항. 택시를 잡고 시내로 가는 길에 운전사 드미트리스 씨(52)는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통역의 도움을 받아 ‘요즘 살림살이가 어떤지’ 물은 끝에 얻은 그의 대답은 허탈함을 자아냈다. 은행 통장이 텅 빈 무일푼이라니….

    시내 호텔이 있는 아테네 옴모니아 지역에서 운임 44유로(약 6만4000원)를 지불하고 내리자 운전사는 연신 ‘생큐’를 연발했다. 그나마 외국인 손님마저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택시 기사와의 첫 만남에서 생계와 생존을 외부 지원에 의존하고, 의사소통은 전혀 되지 않는 그리스의 축소판을 봤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여장을 풀자마자 나가서 본 아테네 분위기도 활력을 잃은 모습이었다. 시내 중심부인 신타그마 광장 주변 에르무와 플라카, 티시오 등 젊은층이 주로 찾는다는 琉?� 최고 번화가에도 관광객 약간명만 눈에 띌 뿐 조용했다. 사실상 ‘허허벌판’이었다. 중심가에서도 조금만 으슥한 곳이면 대낮에도 강도 등 강력 범죄가 발생한다는 통역의 말엔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시내 곳곳에 ‘임대 중’이라는 표지판이 붙은 빈 사무실이 자주 눈에 띄었다. 7층짜리 상가 건물이 통째로 비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지저분한 낙서가 벽면을 뒤덮었고, 언제 버린 것인지 짐작조차 안되는 쓰레기도 거리에 널려 있다. 불황의 흔적들이다. 그나마 문을 연 관광상품점에선 “관광객이 예년에 비해 3분의 1 정도는 줄었다”는 늙은 여주인의 푸념만 접했다.

    길가에 버려져 있는 자동차들을 보고선 깜짝 놀랐다. 자동차마다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고, 사이드 미러는 반파돼 있었다. 저녁 식사자리에서 만난 윤강덕 KOTRA 아테네 무역 과장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몰고 다닐 기름을 살 돈이 없어 그냥 아무렇게나 세워두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은행 가봐야 찾을 돈 없어…총선요? 아무 기대도 안합니다"
    그리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서 퇴출돼 옛 화폐인 드라크마화로 복귀할지 모른다는 불안도 적지 않은 듯했다. 드라크마화가 재도입되면 큰 폭의 평가절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에 대비해 각종 통조림 등의 사재기가 발생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동네상점 주인들은 젊은이 몇명이 몰려다니기만 해도 “혹시 집단 마트털이꾼이 아닐까”하는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한동안 사람들이 유로화가 그리스에서 찍힌 것(코드Y)인지, 독일에서 찍힌 것(코드X)인지를 확인하는 소동도 빚어졌다고 한다. 얼마전에 그리스에서 발행한 유로화가 유럽에서 사용금지될 수 있다는 헛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평가절하된 드라크마가 한 움큼씩 들고 다녀야 하는 휴지조각으로 재등장할 것이란 공포도 일고 있다. 드라크마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화폐로 썼던 철물(鐵物)을 ‘한손 가득히’ 들고 있다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7일 2차 총선을 앞둔 그리스인들의 화두는 ‘분노’였다. 국민들은 열심히 일했는데 부패한 정치인들과 탐욕스런 외국인들이 그리스를 망쳤다는 것이다. 신타그마 광장에서 만난 실직자 니코스 미르토폴로스 씨(28)는 코앞에 닥친 총선에 대해 “기대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조그만 무역회사를 다니다 지난해 중반 쫓겨나 1년 가까이 실직 상태에 있다는 그는 “정치인들의 부정부패 때문에 나라가 망했는데 이제 더 나빠질 것도 없다”며 분노를 터뜨렸다.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를 지지하는 그리스 사람도 많았다. 시리자는 한때 유로존 탈퇴를 불사하겠다고 주장했고 긴축조건을 담은 유럽연합(EU)과의 구제금융협약을 재협상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조그만 음식점을 하다 얼마전 문을 닫았다는 방키니오티스 씨는 “수입은 없고 세금은 끝없이 오르고 있다”며 “어차피 죽을텐데 차라리 유로존을 탈출했으면 좋겠다”고 내뱉었다. “그리스 총선을 앞두고 극좌·극우세력과 현실도피적 낭만주의 세력이 반(反)긴축을 위해 연대했다”는 얼마전 파이낸셜타임스의 분석기사가 문득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그리스가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며 걱정하고 있다. 카랄람보스 카르다니디스 국제경제관계연구소 이사는 “그리스의 경제구조는 이미 유로존을 떠나선 살 수 없는 구조”라며 “어떤 일이 있어도 유로존 탈퇴만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강덕 무역관장은 “2차 총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다들 숨죽여 기다리고 있다”며 “17일은 그리스 운명의 날”이라고 말했다.

    아테네=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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