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억달러(약 8조1550억원) 규모의 폰지 사기를 벌인 혐의로 앨런 스탠퍼드 전 스탠퍼드인터내셔널그룹 회장(62·사진)이 14일(현지시간) 미국 법원으로부터 징역 110년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폰지 사기로 2008년 체포된 버나드 메이도프 전 나스닥증권거래소 회장의 150년형보다는 40년 적은 형량이지만 사실상 종신형을 선고받은 셈이다.

◆은행 흉내만 낸 다단계 금융 사기

텍사스주 출신인 스탠퍼드는 카리브해의 작은 섬 안티과(과테말라의 옛 수도)에서 헬스클럽을 운영하다 은행, 항공사, 신문사 등을 자회사로 거느린 그룹을 세웠다. 그는 스탠퍼드인터내셔널뱅크를 안티과에서 가장 많은 직원을 고용한 은행으로 성장시켰다.

그 공로로 2006년 안티과시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개인용 제트기와 요트, 여러 나라에 호화 주택을 보유한 사치스러운 생활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2008년 포브스는 그의 재산이 22억달러에 달하며 미국에서 205번째 부자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2009년 검찰은 스탠퍼드인터내셔널뱅크가 은행 흉내만 냈을 뿐 사실은 거대한 국제 범죄조직이라고 판단하고 수사에 나섰다. 스탠퍼드는 투자자들에게 은행 예금증서를 판매한 후 그 돈으로 주식과 채권에 투자할 것이라고 속였다. 하지만 그는 투자 대신 리스크가 큰 부동산 벤처사업 등 자신의 사업에 돈을 사용했다. 사기를 감추기 위해 안티과 규제 당국과 외부 감사기관에 뇌물을 주기도 했다.

◆검찰 손 들어준 법원

스탠퍼드는 이날 법정에서 “나는 도둑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수갑을 찬 채 증언대에 선 그는 “스탠퍼드인터내셔널은 합법적인 회사였으며 정부가 내 자산을 동결하는 바람에 사업이 몰락했다”고 항변했다. “투자자들이 수십억달러의 손실을 본 것도 게슈타포(독일 나치 정권의 비밀국가경찰) 같은 전술을 사용한 정부 탓”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윌리엄 스텔맥 연방검사는 스탠퍼드의 진술이 “저속하다”며 230년형을 구형했다. 스텔맥 검사는 “그의 범죄로 수십억달러가 사라졌고 많은 사람들의 삶이 짓밟혔는데도 스탠퍼드는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도 검찰의 손을 들어주면서 사실상 종신형인 110년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또 스탠퍼드에게 은행에 보유하고 있는 예금 59억달러를 과징금으로 내라고 명령했다.

폰지 사기로 100년이 넘는 구속형을 선고받은 건 스탠퍼드와 메이도프뿐만이 아니다. 텍사스 출신인 노먼 슈미트도 2008년 수백만달러의 폰지 사기를 벌인 혐의로 330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바트 클린턴 상품선물거래위원회 위원은 이날 선고에 대해 “사법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기쁘다”고 말했다.

■ 폰지 사기

Ponzi Scheme.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다단계 금융사기를 뜻한다. 1920년대 찰스 폰지라는 사람이 미국에서 벌인 사기 행각에서 유래됐다. 2008년 12월 미국 나스닥증권거래소 회장을 지낸 버나드 메이도프가 금융사기로 체포되면서 폰지 사기가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