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총학생회가 “총학이 이석기 의원, 경기동부연합, 통합진보당과 관련 있는 것처럼 일부 언론에 보도돼 불쾌하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그러자 “너희 부끄러운 마음은 이해하지만 너희가 직접 해결 못하면 불이익은 감수해야 한다(cwyoo)” “교육부는 종북주의 산실인 외대 용인캠퍼스를 즉시 폐쇄하라(semoonoh)”는 등 신문독자의 댓글이 꼬리를 이었다.

최근 종북 주사파로 표적되는 이석기 김재연 임수경 의원은 공교롭게도 모두 이 대학 출신이다. 외대 용인캠퍼스 후배들이 이들 때문에 옥석(玉石) 구별 없이 불이익을 받음은 불공정해 보일 것이다. 그런데 탈북자 백요셉 씨의 증언에 의하면 이 대학의 북한전문가 교수는 “북한에 관한 가장 확실한 정보는 노동신문이고 가장 못 믿을 것은 탈북자다, 북한 정부를 괴물로 만든 것은 남한과 미국”이라는 강의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의 언론 기업 정부가 이런 종북적 교육을 받는 외대 용인캠퍼스 출신들을 의심함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역사에는 역적이 난 땅과 주민이 통째로 처벌받은 사례가 종종 발견된다. 광해군의 계축옥사 주역인 정인홍이 인조반정 후 참형됐을 때 그의 고향 합천군은 ‘반역향’이라 하여 현(縣)으로 강등됐다. 합천의 선비에게는 과거가 금지돼 출사(出仕)의 길이 막혔다. 중국의 대명률(大明律)을 본받은 이 반역향 강등은 태종~정조년간 영흥 남해 길주 충주 안악 가평 서산 청주 안동 공주 등에서 이뤄졌다.

반역향 처벌은 역적질 같은 반(反)왕권 범죄에는 그 고을과 군민에 공동책임이 있다는 이씨왕조의 형정(刑政) 철학을 보여준다. 오늘날 역적질에 해당하는 것이 반국가범죄이며 종북주의는 북한처럼 우리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붕괴시키려는 범죄다. 이는 개인 간 위해 행위와 달리 전 국민에게 해를 입히는 범죄이므로 사회가 그 근원 조직체를 탐색해 문죄(問罪)함은 공동체의 본능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과연 종북주의는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1930년대 스탈린은 집단농장정책에 저항하는 농민 500만~1000만명, 당시 소련인구의 10~20%에 이르는 국민을 굶겨죽였다고 한다. 캄보디아에서 폴 포트의 부르주아와 지식인 말살정책은 인구의 3분의 1을 학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류가 때때로 수백만, 수천만의 인명을 살상하는 전쟁을 치르지만 이념 때문에 자기 국민을 이처럼 살육하는 일은 오직 골수 공산주의자 집단만이 하는 일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이처럼 인간 목숨을 초개처럼 처리하는 것은 이들이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선 무엇이나 희생 가능하다는 신념을 가지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의 목적도 김씨왕조의 유지를 위해 국민을 노예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체제와 이념을 공유하는 집단의 특성 역시 북한 집권자들과 같으리라 볼 수 있지 않은가. 북한 정권처럼 남한 종북주의자들에게도 인간애의 개념이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들은 북한 체제의 안정이 중요하며 북한 인민의 인권 따위는 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아닌가. 이들에게 북한 체제를 탈출하고 불안하게 하는 탈북자들은 얼마나 미운 ‘변절자’가 되겠는가.

오늘날 우리는 이런 종북주의의 위험이 얼마나 위중한가를 잊고 살고 있다. 북한 영도자들처럼 자기 국민을 혹독히 다루는 사람들이 남한 국민에게 못할 일이 무엇인가. “설마 북한이 핵무기를 남한에 겨눌 것인가” 같은 종북주의자들의 생각은 과연 북한 지도자도 하고 있는 생각인가. 우리 사회 종북 좌파들의 목적 역시 남한을 북한처럼 사회주의 낙원으로 바꾸는 것이다. 비록 1%의 확률이라도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과연 우리가 어떤 인명의 대가를 치르게 될지 상상조차 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북한의 참상을 직접 목도하는 남한 땅에 이런 종북주의가 창궐함은 그 바이러스가 얼마나 강력한지 증명하는 것이다. 이때 외대 용인총학이 북한 추종자와의 차별화를 명백히 밝힌 것은 실로 용감하고 반가운 처사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이런 총학의 희망이 언론에 푸념하기보다 행동으로 동료와 학교를 변화시키는 결실을 이룰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김영봉 < 세종대 경제학 석좌교수 kimyb549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