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기를 좋아하는 초등학교 6학년 여자 어린이가 있었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부모가 이혼한 후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자활 근로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평소엔 명랑한 편이지만 힘들게 일하는 어머니와 외할머니 이야기엔 마음이 쓰이는지 금세 표정이 어두워진다고 했다. 한 복지관을 통해 사연을 전해 들은 직원들이 몇 차례 운동화 선물과 함께 응원의 메시지를 적어 보냈고, 2년가량 흐른 뒤에 이 어린이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았다고 했다. 편지엔 그간 메시지에 대한 답신과 함께 “축구 선수의 꿈을 키우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삶의 무게를 일찍 알아버린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가슴 한 구석이 저릿함을 느낀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꿈을 키워 나가는 어린이들을 보면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다. 자식을 둔 모든 부모의 마음이 필자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어린이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교육과 보살핌을 받는지가 중요하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받으면서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라는 어린이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어린이도 아직 많은 것 같다. 우리 사회에 소외된 이들이 많지만 필자는 그 중에서도 어린이에 대한 관심을 거둘 수가 없다. 이 어린이들에게는 본인이 태어나고 자랄 가정을 선택할 권리가 없었다. 가정에서 이 어린이들을 돌볼 수 없다면 최소한 이들이 현실을 바꿀 힘을 갖출 때까지는 어른들이, 사회가 그 책임을 나누어 져야 하지 않을까?

간혹 “아이들이 아프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을 보는 일은 그 자체로 너무 힘들다”고 말하는 이들도 봤다. 필자도 같은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하지만 한 직원이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이 지내는 곳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뒤 “살면서 이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외면하고 살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하는 말을 듣고 깨달은 바가 컸다. 맞는 얘기다. 나눔의 많고 적음을 따지기 전에 현실을 마주할 준비가 먼저 돼 있어야 하고, 그럴 준비가 됐다면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나누기 시작하면 된다.

부서 단위로 팀을 이뤄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들에게 경제적 지원과 함께 멘토 역할을 해 주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꿈을 키워 가는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조심스레 의견을 냈던 것이다. 흔쾌히 동참해 준 직원들 덕분에 지금까지 4년째 50여명의 어린이와 인연을 맺어 오고 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내오는 어린이들도 있는데, 여기엔 다음과 같은 말이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었다. “나중에 커서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고사리 손으로 적어낸 말이지만 필자는 그 약속을 믿는다. 그리고 훗날 이 어린이들이 그 약속을 꼭 지킬 수 있도록 관심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정문국 < 알리안츠생명 사장 munkuk.cheong@allianzlif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