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세계 미술시장의 전체적인 흐름이 활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세계 미술경매 시장의 총 거래액은 115억달러(14조원)로 호황을 누리던 2007년 93억9000만달러보다 10% 이상 웃돌았다. 미술품 가격지수인 메이모제스(Mei Moses)지수도 2010년 초부터 상승세다.

로버트 맨리 크리스티뉴욕 현대미술 분야 수석 부사장(50)과 에릭 창 홍콩크리스티 아시아 미술담당 총책임자(43)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신규 슈퍼리치 고객 증가세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미술품 경매시장은 추가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며 “미술품은 유럽 위기에 따른 세계 경제침체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은 유망한 안정 자산”이라고 말했다. 뉴욕 크리스티의 현대미술 경매를 이끈 맨리 수석 부사장과 홍콩에서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현대미술품 경매를 지휘한 에릭 창에게 국제 미술시장의 동향과 전망을 각각 들어봤다.

◆ 로버트 맨리

“지금이 국제 미술시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뉴욕시립대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그는 유럽 위기에 따른 세계 경제의 불안감에도 국제 미술시장의 전망을 매우 밝게 봤다. 2000년 크리스티뉴욕에 입사해 줄곧 현대미술 수작만을 모아 실시하는 이브닝 경매를 주관해온 그는 지난달 크리스티뉴욕 경매의 경우 87%의 평균 낙찰률을 보이면서 6억1600만달러의 판매액을 기록했다”며 “특히 전후 동시대 미술 경매 부문이 두드러진 강세를 보여 앞으로 미술시장이 낙관적”이라고 점쳤다.

▶미술시장 전문가가 된 특별한 인연이나 계기가 있었습니까.

“저는 원래 법학을 공부하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시절 우연히 미술사 수업을 듣게 됐는데 왠지 끌리더군요. 다음날 전공을 미술사로 바꾸기로 결정했고, 그날 이후 계속 외길을 걸어왔습니다.”

▶평소 경매를 위한 작가와 작품 선택 원칙은 무엇입니까.

“대부분 크리스티는 경매기록을 갖고 있는 작가의 작품을 출품하지요. 하지만 동시대미술(contemporary art) 분야에서는 때로 1차시장인 화랑에서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는 젊은 작가 작품을 경매하기도 합니다. 특정 작가의 작품에 대한 수요는 많지만 공급이 쉽지 않을 때는 소장가를 설득해 경매에 작품을 출품하기도 하고요.”

▶국제 미술시장 전망은 어떻습니까.

“국제 미술시장, 특히 전후 현대미술시장의 미래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밝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놀랍게도 크리스티경매에는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았습니다. 지난 2월에 열렸던 런던경매는 역대 최고의 결과를 냈고요. 대부분의 구매자들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인들이었거든요. 이달 말에 열릴 예정인 런던 경매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시장의 차이점과 전망은.

“미국시장은 유럽보다 훨씬 큽니다. 뉴욕은 여전히 세계 미술시장의 중심이고, 전 세계 어느 곳보다 많은 갤러리와 경매회사가 있지요. 저는 미국과 유럽시장의 미래는 모두 매우 낙관적이라고 봅니다. 지난 2년간 낙찰 결과는 미국과 유럽시장 모두 역동적인 성장을 지속할 것이라는 점을 설득력있게 보여줬거든요.”

▶미술 투자원칙을 소개한다면.

“일단 최대한 많은 것을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최고의 화랑 전시를 보고, 경매 프리뷰, 박물관 전시를 열심히 찾아다닌다면 자신에게 가장 영감을 주는 작품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될 겁니다. 그 후에는 작가들에 대해 공부하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가’라는 기준에 맞춰 구매를 결정하면 됩니다. 가격과 투자에 대한 걱정은 다음에 생각하시고요. 작품 선택의 과정을 줄이려면 컬렉션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고의 컬렉션은 미술품에 대한 진정한 열정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미술을 배우는 것은 언어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지요. 지름길은 따로 없습니다. 전문가를 고용해 미술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스스로 아름다움을 발견해가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일 겁니다.”

▶미술시장이 발전하는 데 걸림돌은.

“미술시장 발전에 걸림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다만 예술품에 부과되는 세금 관련 조항이나 예술품의 수출입을 어렵게 만드는 관세 관련 조항이 완화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유망한 현대 미술 작가를 소개한다면.

“이 같은 질문은 저를 참 당황하게 만듭니다(웃음). 미학적 관점에서 제가 존경하는 몇몇 작가들은 프레드 샌드백, 서도호, 존 웰슬리, 프리드리히 쿠나스, 루스 아사와, 곤잘레스 토레스, 프란츠 웨스트, 루돌프 슈틴젤, 로버트 고버, 빌 트레일러 등입니다. 이 작가의 작품들은 모두 감동을 주고, 작품 제작 기법도 참신하거든요.”

▶크리스티가 성장한 원동력은.

“세계 어느 집단보다 더 많은 경험과 시장지식을 지닌 국제적인 팀워크 때문이겠죠. 크리스티는 미술시장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프라이빗 경매와 온라인 경매 영역을 확장하는 동시에 미국과 런던 유럽에서도 보석, 인테리어, 시계, 와인 등 다양한 경매 장르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 에릭 창

“중국 현대미술이 국제시장에 진입한 지 12년 됐습니다. 이미 세계적으로 명성이 알려진 작가군이 존재한 만큼 작품 가격도 상승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한국은 이제 시작 단계이므로 앞으로 국제적인 전시회에 많이 참가해 인지도를 높여야 할 겁니다. 국가적인 지원도 필요하고요.”

지난 10년 동안 아시아 미술시장을 이끌어 온 에릭 창은 “아시아의 미적 가치가 시장에서 받아들여지도록 ‘시대성과 민족성, 화가의 개성’ 등 3대 요소를 살리는 것이 핵심”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아시아 미술품의 인기가 거품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아시아 미술이 표현기법과 독특한 관점, 세계화된 작품 경향 때문에 전망이 밝다”고 얘기했다.

▶한국미술과 특별한 인연이나 계기가 있었습니까.

“저는 아시아 미술의 미학적 가치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보고 세계시장에 소개하는 방법에 주목해 왔습니다. 한국 미술은 아시아 미술의 고유성을 잘 보여주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작가들이 다양한 재료와 색상을 새롭게 해석하고 사용한다는 점이 특징이고요. 저는 이런 점 때문에 한국 미술이 국제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한국의 모던한 작품은 매우 세련됐고, 현대미술은 컨셉트, 재료, 기법 측면에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경매에 출품할 작가와 작품을 선택하는 원칙은 무엇입니까.

“아시아 미술의 고유한 미학적 가치가 중요한 기준입니다. 독특한 재료나 기법 혹은 창의적인 컨셉트를 통해 문화적 가치를 작품 세계에 반영해내는 작가들에게 흥미를 느낍니다.”

▶아시아 미술시장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 같습니까.

“일부에선 아시아 미술의 가격이 이미 정점을 찍었다고 얘기합니다.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예들 들면 중국 인기 추상화가 자오우키의 경매기록은 800만달러 정도인데, 이는 지난달 크리스티 뉴욕경매에서 마크 로스코 작품의 10분의 1도 안되는 금액입니다. 한국의 인기 화가 김환기 작품의 경매기록 역시 아직 150만달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경매기록은 아시아 미술시장이 더욱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유럽 위기가 아시아 미술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놀랍게도 유럽 경제위기는 아시아 미술시장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았습니다. 1900년대 초에 미술시장의 중심은 유럽이었고, 1950년대에는 그 중심이 미국이었다면 이제는 아시아입니다. 아시아 미술은 서양 미술과 비교할 때 매우 다른 시각을 지녔거든요. 지난 10년 동안 많은 컬렉터들이 아시아 미술의 미학적 가치에 눈을 떴고, 이러한 관심 때문에 미국 유럽 문화권에서도 작품 구입을 늘리고 있습니다.”

▶한·중·일 3개국 작가들의 작품 특징은.

“한국의 경우 현대작가의 작품이 대부분 한국적 색채를 현대적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합니다. 전통과 현대성의 연결이라는 몫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높게 평가할 수 있겠죠. 또한 한국 현대작품들은 금속, 데님, 새틴, 나무 등 희귀하게 사용됐던 재료들을 적극적으로 작업에 활용하고 있고요. 일본 현대미술에서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선진국에서 주로 나타나는 경향인 개인의 심적 자유를 찾으려 애쓰는 모습이 보입니다. 상상력이 돋보이며 일상생활에 대한 고찰과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사색도 스며있는 것 같고요. 이에 비해 중국 현대미술은 문화대혁명의 다양한 역사적 체험에서 비롯된, 정치체제를 비판하는 경향이 강하게 드러나죠.”

▶미술품 투자원칙을 소개한다면.

“저는 무조건 벽에 걸어놓고 싶은 그림을 사라고 조언합니다. 성공한 미술투자가들은 마음 깊이 우러나는 미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 때문에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투자에 대한 관심은 차후의 문제라는 겁니다. 인기 작가들도 결국 작품의 퀄러티나 희귀성, 컨디션, 소장기록 등의 기본적인 평가기준에 따라 가치가 평가됩니다. 투자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구입한다면 부담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작품을 사는 것이 좋습니다. 경매, 갤러리, 박물관을 직접 방문해서 다양한 작품들을 고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시아 미술시장 발전의 걸림돌은.

“특별한 걸림돌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아시아 미술은 세계시장에서 더욱 주목을 받으며 성장할 겁니다. 물론 아시아 미술의 퀄러티가 아시아 컬렉터뿐만아니라 미국 유럽 등 다양한 컬렉터들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저는 2002년부터 동료 직원과 시장의 지원을 받으면서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미술을 하나로 통합해왔습니다. 작년에는 동남아시아 미술 분야를 통합하는 데 성공했고요. 크리스티가 아시아 미술시장에서 선두를 유지하기 위한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시아에서 유망한 작가를 소개한다면.

“아시아에는 너무 좋은 작가가 많아 몇몇 작가의 이름만 거론하기가 힘들지요. 근대 중국 작가 중에는 우관중, 자오우키, 산유를 꼽을 수 있죠. 현대미술 작가들로는 쩡판즈, 리우웨이, 리우예, 김환기, 이우환 등이 매우 유망합니다. 서도호도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서도호의 설치 작품이 지난달 홍콩이브닝세일에서 240만홍콩달러에 낙찰되기도 했었죠. 동남아시아 작가로는 이만퐁, 쳉수피엥, 아판디, 마스리아디 등에 관심을 둘 만 합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