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끝나지 않은 전쟁
1950년 6월25일 북한 김일성의 기습 남침으로 국토가 참화에 휩쓸린 지 62년째다. 3년1개월을 끈 이 전쟁으로 모든 것은 잿더미로 변했고 수많은 인명이 살상당했다. 국군 전사자와 실종자만 17만여명, 부상 45만여명이고 민간인 사상자와 행방불명자는 100만명에 이른다. 전쟁미망인 20만여명과 고아 10만여명의 상처도 깊다. 미군 전사자 3만6000여명을 포함해 그들이 알지도 못했던 먼 이국 땅에서 산화(散華)한 유엔군 4만명의 희생은 더욱 잊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비극과 참상의 단편이라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은 이제 다들 노년세대로 밀려나면서 전쟁은 망각의 세월에 묻히고 있다. 전쟁이 언제, 왜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안보 무지(無知)의 세대가 대세다. 목숨바쳐 나라를 지켜낸 호국영령들을 기리기 위한 어제 현충일은 나들이 아니면 그저 쉬는 하루의 휴일이었을 뿐이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는데 우리만 그 전쟁을 잊어가고 있다. 1953년 휴전 이후에도 북한은 도발을 멈춘 적이 없고 공격은 더욱 극악(極惡)해졌다. 해군장병 6명이 전사한 2002년 6월의 2차 연평해전, 다시 2010년 3월 해군장병 46명의 목숨을 일순간에 앗아간 천안함 폭침, 그해 11월 연평도 포격의 아픈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도 북은 조준목표까지 적시하면서 광기에 찬 공격위협과 핵참화 협박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스스로 무장(武裝)을 내려놓았다. 국토안보의 전제인 ‘주적(主敵)’은 2001년 이후 국방백서에서 사라졌다. 남북간 화해와 협력, 평화를 통해 통일의 시대를 열 것이라던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은 역사적 실패작이다. 북의 견고한 갑옷을 벗기기는커녕, 우리의 안보의식만 해체시키고 그들에게 막대한 돈을 퍼주면서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를 도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이제 우리는 김일성이 일으킨 전쟁에 맞서 수십만 젊은 목숨들이 지켜낸 이 나라가 김일성 숭배주의자들에 의해 흔들리는 기막힌 현실에 직면했다. 진보라는 허위의 탈을 쓰고, 주체사상에 물든 종북(從北)세력이 국민의 대표로 대한민국의 심장인 국회에 들어왔다. 헌법으로 특별히 신분을 보호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고액의 연봉과 보조금, 온갖 혜택을 줘가며 그들의 반국가적 행위를 지원해야 한다. 이런 도착적(倒錯的) 상황이 어디 있는가.

주사(主思)·종북주의자들에 있어 대한민국은 부정(否定)의 대상이라는 것이 이번에 분명히 확인됐다. 한반도 현대사의 정통성이 북한에 있다는 미망(迷妄), 남한은 미(美) 제국주의의 식민지라는 착각이 그들의 인식세계를 지배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규범과 기본질서, 법과 제도를 파괴하는 것은 그들의 당연한 임무다. 스스로 ‘민주주의자’라고 강변한 종북의 핵심 이석기 의원은 3대 세습 왕조독재가 자유를 억압하고 인민을 굶겨 죽이며 인권을 짓밟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그 민주주의를 말한다. 목숨 걸고 지옥을 벗어난 탈북자들을 변절로 몰아붙인 임수경 의원은 종북의 관점(觀點)이 어디 있는지 가장 명료하게 입증했다. 그들이 걸핏하면 내세우는 “북의 눈으로 북을 이해하자”는 ‘내재적 접근법’은 북한 노동당원 송두율의 궤변이다. 세상의 보편적 가치와 기본적 인권이 북한에서만 부정되고 예외여야 한다는 것은 속임수이지 철학적 명제일 수 없다.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남과 북의 체제 경쟁은 그 승패가 갈린 지 이미 오래인데 안보의 전선(戰線)은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국민들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우리 안의 적들이 활개치면서 강고한 세력을 구축하는 것을 조장했다. 국민은 진보의 이름에 기만당해 종북의 본색이 감춰진 사실을 몰랐다. 북의 대남전략인 주한미군 철수, 한·미 동맹 해체, 국가보안법 폐지를 전면에 내세운 통합진보당의 노선을 그저 이념의 자유로 이해했던 것 또한 너무 순진했다.

이건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용인할 수 있는 이념적 다양성의 한계를 넘어 대한민국 체제의 안전을 흔드는 현재화(顯在化)된 위협이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그 위협의 정체, 종북의 실체를 이제 조금이라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전쟁의 가장 힘든 상대는 내부의 적들이다. 대한민국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추창근 기획심의실장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