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태원동에 있는 주한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은 최근 국내 거래 은행을 HSBC은행에서 외환은행으로 바꿨다. 거래 수수료를 대폭 낮춰주겠다는 외환은행의 제안을 받아들인 결과다. 외환은행은 주한 대사관 가운데 국내 은행과 거래 규모가 가장 큰 사우디아라비아를 잡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게 됐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외국인도 국내 고객과 마찬가지로 수수료를 많이 따지는 경향이 있다”며 “대사관 근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지점장 전결로 송금수수료의 상당액을 감면해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이 외국인 고객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내 거주 외국인이 140만명을 넘어서는 등 시장이 커지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은행들은 종전 영어권 위주 고객 서비스에서 비영어권으로 서비스 대상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외국인이 국내 은행을 이용할 때 가장 불편을 겪는 것은 언어다. 이런 점을 고려해 우리은행은 지난달부터 8개 국어로 표시된 은행거래신청서를 점포에 비치했다. 기존에 한국어와 영어로만 제공했던 예금거래신청서나 송금신청서에 중국 베트남 몽골 인도네시아 네팔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 7개 국어를 추가한 것이다.

신한은행도 이달부터 영어 등 6개 국어로 제공하던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 몽골어와 러시아어 서비스를 추가하기로 했다. 국민은행은 외국인전용 콜센터를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수수료 할인 혜택을 제공해 외국인 고객을 끌어들이려는 은행도 적지 않다. 농협은행은 이달 중순부터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ATM기 등을 이용할 때 수수료를 최대 45% 깎아주기로 했다. 환전 때도 우대혜택을 준다. 국민은행은 외국인이 자국 등으로 송금할 때 베트남 필리핀 등 11개국의 현지 통화로 직접 송금해 환전에 따른 비용을 절감시켜주고 있다.

금융서비스 외에도 다양한 서비스로 외국인을 공략하기도 한다. 전체 외국인 체류자의 30%가량인 42만명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는 외환은행은 최근 외국인 고객을 위한 ‘오메가 서비스’를 도입했다. 이 서비스는 외국인이 국내에 처음 정착할 때 금융을 비롯해 이주 및 정착, 통신, 문화, 레저 등의 서비스 일체를 제공하는 것이다.

기업은행은 외국인 근로자용 체크카드를 출시하고 카드를 발급받은 만 20세 이상 외국인에게 ‘선불휴대폰’을 무료로 제공한다. 선불휴대폰은 사전에 통화요금을 충전해 사용할 수 있는 휴대폰이다.

평일 근무로 인해 거래가 어려운 외국인을 위해 휴일에 근무하는 영업점도 있다. 우리은행은 서울 혜화동, 광희동과 경기 의정부 등 3개 점포를 외국인을 위한 휴일영업점으로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 밀집 지역 중 하나인 안산시 원곡동에서는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이 각각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영업점을 운영한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