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26 사태’까지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18년 통치를 옆에서 보좌하며 대한민국을 움직인 권력집단은 김종필 전 총리, 고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고 유학성 의원 등으로 대표되는 육군사관학교 8기였다. 그렇다면 육사 8기의 바통을 이어받은 파워엘리트 그룹은 어디일까. 관가에서 이 질문의 답이 ‘행정고시 10회’라는 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1970년대 개발연대부터 1990년대 이후 민주화 시대까지 행정부의 다양한 요직을 꿰차며 장관만 22명을 배출한 행시 10회. 이들 행시 10회 14명이 최근 ‘1971~2011 공직 40년, 기록과 회고’라는 이름으로 책을 냈다.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동 한국경제사회발전연구원 사무실에 그중 4명의 집필자가 회고록 출간과 관련한 인터뷰를 위해 모였다.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를 역임한 이규황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 부회장, 김종문 전 성원건설 사장, 최순현 한국경제사회발전연구원 사무총장이다.

“공직 40년의 기록이란 책 제목에서 볼 수 있듯 정말 대단한 기수네요”라는 인사에 정 이사장 등은 동시에 손사래를 쳤다. “뭐 대단할 건 없고, 다른 기수에 비해 고위 공무원이 좀 많이 나오고 한국 근대화 40년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의미 정도죠. 우리보다 국가 발전에 더 많이 기여한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최 사무총장이 말을 받았다. “동기들 중에 고위 공무원이 많긴 하죠. 정 전 장관 말고도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 등 장관만 22명, 차관이 16명, 국회의원 5명, 도지사 2명, 시장·군수도 5명이나 나왔으니까요.”

처음엔 인터뷰가 부담스럽다던 이 부회장의 책 소개가 이어졌다. “1971년 선발된 행시 10회는 당시로선 꽤 많은 189명이나 됐어요. 그 전까지는 한 해 두 번 행시가 치러졌는데 많아야 수십 명이었죠. 각 정부 부처에 동기들이 배치되지 않은 곳이 없었어요. 실무 책임자였으니 부처 간 협조도 잘 됐어요. 그렇게 살아온 40년의 이야기를 담은 거죠. 한국 현대사 자료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하하.”

책을 내게 된 계기를 묻자 이 부회장은 “지금도 매달 동기들과 점심모임을 갖는데, 작년 8월 서주석 아주대 교수, 최진 전 주중국대사관 공사와 밥 먹으면서 얘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공직에 있었던 얘기를 말로만 하지 말고 글로 엮어 보자고.

1997~1998년 외환위기 수습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던 정 이사장(당시 재정경제원 제2차관보), 1989년 분당·일산 신도시 계획을 진두지휘했던 이 부회장( 건설부 토지국장), 1979년 박 대통령 서거 직전까지도 행정수도 이전 계획서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는 김 전 사장( 청와대행정수도건설기획단 과장) 등의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졌다.

오전 10시30분에 시작한 인터뷰. 연구원 벽시계가 정오를 한참 지났을 무렵 공무원 후배들에 대한 당부라며 정 이사장과 이 부회장이 얘기를 마무리했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정부가 국가 발전을 주도하고 현장의 공무원들은 맨몸으로 싸우는 용사였어요.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고 공직자 역할도 바뀌었지요. 하지만 퇴직한 선배들의 이런 기록이 후배 공직자들에게 자신의 역할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