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contagion)이 시작됐다.”

유로존 위기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 유럽은 물론 미국, 브릭스(BRICs) 등 주요 국가의 제조업 경기가 동시에 침체되기 시작했다. 금융시장은 패닉 직전이다. 미국 주가는 올 들어 최저치로 추락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부도 위험은 사상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 재정위기, 금융위기, 제조업 위기가 동시에 몰려오면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이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글로벌 제조업경기 일제히 급랭

지난주 미국과 유럽, 중국 등 주요국 제조업 경제지표는 일제히 나빠졌다. 세계경제의 동반침체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월 54.8에서 5월 53.5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유로존(유로화사용 17개국) 제조업 PMI도 45.9에서 45.1로 떨어졌다. 상대적으로 잘나가던 영국 제조업 PMI는 4월 50.2에서 5월 45.9로 급락했다. 최근 3년 만에 가장 큰 낙폭이다.

최근 제조업 경기가 식으면서 고용 회복세도 주춤해졌다. 기업들이 고용을 꺼리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5월 고용지표는 ‘쇼크’ 수준이었다. 비농업 취업자 수는 6만9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시장 예상치였던 15만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 것이다. 실업률 8.2%로 전월(8.1%) 대비 상승했다. 유로존의 4월 실업률도 11%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흥국 경제도 면역력이 떨어지고 있다. 중국의 5월 제조업 PMI는 50.4로 4월(53.3)에 비해 2.9포인트 하락했다.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이탈하면 중국 경제성장률이 4%대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브라질 1분기 경제성장률은 0.2%에 그쳤다. 2년6개월 만에 최저치다.

세계 최대 채권투자회사 핌코의 모하메드 엘 에리언 최고경영자(CEO)는 “미국과 유럽을 비롯해 신흥국에서 나온 모든 지표들이 세계경제가 동반침체에 빠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이 같은 전망이 나오자 투자자들이 주식 등 위험자산을 재빨리 내던졌다”고 전했다. 씨티그룹의 마크 쇼필드 채권 전략 책임자는 “이번주 지표들은 한마디로 게임 체인저(game-changer)였다”며 “시장은 유로존 혹은 재정동맹이 깨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패닉 또 온다”

올여름 세계 금융시장이 2008년의 패닉을 다시 한 번 겪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퇴임을 앞둔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WB) 총재는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 등을 통해 “유로존 리더들이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와 스페인 금융위기 등 다가올 참사에 대해 충분히 무장돼 있는지 의문”이라며 이같이 경고했다. 그는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이탈하면 스페인 금융위기가 촉발되고 사태가 이탈리아 등 유로존 국가로 번져나갈 것”이라며 “위기가 어디까지 전염될지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때와 같다”고 진단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2일 주례 라디오·인터넷 연설을 통해 “우리 경제는 지난해의 오늘과 똑같이 심각한 역풍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세계경제가 동반침체에 빠지면 회사채 시장도 위기를 맞게 될 것이란 분석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향후 4년간 미국과 유럽, 아시아 주요 기업들이 만기도래하는 차입금을 갚고, 새로 투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이 43조~46조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지면 회사채 시장이 자금 수요를 모두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