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MS)의 공문 한 통이 국방부에 날아들었다. 불법 소프트웨어(SW) 사용 때문이다. 언제 터지나 했다. 국방부의 불법 SW 사용률이 높다는 건 이미 다 알려진 얘기다. 판매 개수와 실제 사용 PC 숫자 등을 고려할 때 몇십%에 이른다는 추정도 있다. 캐슬린 스티븐슨 전 주한 미국대사까지 이 문제를 언급했을 정도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정부 부처를 포함한 공공기관 실사 결과 불법복제율이 0.7%라고 했다. 보안이 생명인 국방부조차 이 수준인데 문화부의 발표를 누가 믿으려 할지 의문이다. 이래놓고 정부가 불법 SW를 몰아내자고 하면 먹히겠나.

불편한 진실은 이게 끝이 아니다. 정부는 시장을 탓하지만 정작 정부가 더 문제다. SW에 대한 모호한 태도부터 그렇다. 어떤 때는 정부 주도 공짜정책을 말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정당한 대가를 말한다. SW가 공공의 영역인지, 시장의 영역인지 종잡을 수 없게 하는 건 바로 정부다.

시장보다 정부가 더 문제

가격 후려치기 등을 이유로 대기업 계열 시스템통합(SI) 업체들을 비난하는 정부의 모순적 행태도 마찬가지다. 후려치기로 치면 정부가 원조다. 정부는 예산 절감을 이유로 이를 정당화하면서 대기업에는 제 값 쳐주라고 윽박지른다. 중소기업을 위한 답시고 조달시장 분할도 모자라 아예 대기업은 발도 못 붙이게 하겠다고 한 것도 정부였다. 그러나 막상 사용자 입장에서 따져보니 걱정이 됐던 모양이다. SW의 특성상 만일의 사고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런저런 예외조항이 잔뜩 들어갔다. 성가신 규제만 더 늘어난 꼴이 되고 말았다.

SW산업이 지식경제부로 이관된 뒤 끊이지 않는 정보통신부 부활론도 그렇다. SW 주무부처가 꼭 있어야 하는지 그것부터 의문이다. 정통부가 없어 SW산업이 안 된다는 주장은 더더욱 동의하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가 SW를 위해 잘한 게 딱 하나 있다면 애플 아이폰의 국내 진입 허용이다. 그 하나만으로 SW 환경은 확 변했다. SW 인력의 몸값도 올라갔다.

정부가 구글 애플에 대응한다고 차세대 운영체제(OS) 개발을 들고 나온 것도 시장 현실과는 동떨어진 발상이었다. 시장은 전혀 기대감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 곳에 세금을 쓰느니 차라리 인력 양성에 돌리라는 분위기다. OS 표준은 정부가 아닌 시장에서의 세력 싸움이 결정한다.

한국은 SW에 약하다?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SW산업, 그 불편한 진실
정부가 SW인력 이동을 막겠다는 것도 문제다. 인력 이동 때문에 중소기업이 다 망한다지만 그게 맞다면 이동이 빈번한 미국 실리콘밸리 중소 SW기업들은 벌써 망해야 했다. 개발자 등 SW인력은 라이프 사이클이 짧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돈을 벌어야 한다. 이동성은 그런 특성의 불가피한 산물이다. 오히려 이동성 때문에 SW의 창조적 혁신이 더 촉발된다는 분석도 있다. SW기업은 이동성을 전제로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하는 게 기본이다.

근원적으로 들어가면 “한국은 SW가 약하다”는 주장이 맞는가하는 의문에까지 이른다. 하드웨어(HW)가 SW보다 강하다는 것과 SW가 약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우리가 잘한다는 게임은 SW가 아닌가. 구글도 안 먹히는 토종 검색시장, 카카오톡, 선전하는 보안업체, 한글과 컴퓨터 등은 또 어떻게 봐야 하나. 자동차 전자 등 수출상품에 체화된 수많은 SW도 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실제적, 잠재적 SW 강점을 정작 모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불편한 진실일지 모른다. 정부가 할 일, 시장이 할 일이 따로 있다. SW문제의 해법은 이 모든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