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말. 미국은 물론 한국 언론까지 떠들썩했다. 내용인즉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부부의 외동딸 첼시의 결혼식. 뉴욕 시 외곽에 있는 베르사유 궁전 모양 대저택을 빌려 식을 올리는 데 500만달러(60억원)가 들었다는 보도였다. 웨딩 총책은 살림의 여왕으로 유명한 마사 스튜어트.

내역도 나왔다. 장소 대여료 25만달러, 야외천막 설치 70만달러, 식대 80만달러, 꽃값 20만달러, 파티 플래너 17만5000달러, 연주·촬영· 조명· 메이크업· 초청장 발송· 보안 비용에 베라 왕의 웨딩드레스까지. 신랑은 골드만삭스 투자은행 직원인 마크 메즈빈스키.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을 지낸 에드 메즈빈스키의 아들이다.

클린턴 부부가 백악관을 떠난 뒤 자서전 출간과 강연 등으로 벌어들인 돈만 1억달러가 넘는다니 500만달러쯤은 가벼웠을 수도 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인 데다 아버지는 섹스 스캔들로 상처를 입혔고 엄마는 바쁘니 미안한 마음에 그렇게라도 보상해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 사회 일각에선 1971년 ‘미국 왕실의 행사’란 비난을 받았던 닉슨 전 대통령의 딸 트리셔의 결혼식에 버금간다는 비아냥이 나돌았다.

얼마 전엔 깜짝 결혼식 뉴스가 세계로 퍼졌다. 주인공은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식장은 자기집 뒤뜰. 신부(프리실라 챈)에게 준 반지는 평범한 루비. 하객은 90여명. 식사는 동네식당에서 주문한 일식. 청첩장을 돌리지 않아 빈손으로 왔던 손님들이 화들짝 놀랐다는 소식도 보태졌다.

저커버그는 하버드대 시절 가난하고 외로웠던 인물이다. 기업 공개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지만 200억달러(22조원) 갑부가 된 만큼 온 세상이 보란 듯 뻐길 수 있었을 것이다. 중국계 신부인 챈 역시 화려한 결혼식으로 자신의 존재와 행운을 뽐내고 싶었을 수 있다. 두 사람은 그러나 최소의 하객만 초대하는 조촐한 결혼식을 선택했다.

첼시 클린턴과 마크 저커버그의 결혼식은 실로 대조적이다.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결혼은 당사자들만의 결합이 아니라 양가의 결합인 수가 많고 따라서 어느 한 쪽의 생각대로만 이뤄지기 힘든 까닭이다. 문제는 체면이나 욕심 때문에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느냐 훗날을 생각해 분수를 지키느냐 하는 것이다.

국내에선 결혼식이 주로 부모 행사이거나 과시용인 수가 많다. 특급호텔 결혼식이 재허용된 1999년 이후 13년 동안 예식비가 네 배나 늘었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호텔 결혼식을 치르자면 꽃값만 2000만원 이상 들어 1억원은 간단히 넘는다는 마당이다.

호텔 결혼식이 아니라도 은퇴하고 나면 하객이 줄어드니 어떻게 해서든 현직에 있을 때 결혼시키려 상대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날부터 잡아놓는다는 우스갯소리도 떠돈다. 한 쪽의 하객이 적으면 원래 반반씩 부담하는 예식비를 어떻게 나누느냐는 문제로 식장에서 큰소리가 오간다고도 한다. 양가의 축복 속에 이뤄져야 할 예식이 돈 때문에 처음부터 삐걱거리는 것이다.

예식비뿐이랴. 혼수와 예단비 문제로 혼사가 깨지거나 결혼 후 파경에 이르는 수도 적지 않다. 계절에 관계없이 시어머니의 밍크코트와 다이아몬드 반지 등을 요구하는 게 드라마 내용에 그치지 않는다는 얘기다. 지난해 2월엔 예단비 10억원과 봉채비(신랑집에서 신부집에 보내는 예물비) 2억원을 주고받은 뒤 결혼했다가 5개월 만에 헤어진 부부가 맞소송 끝에 신랑이 예단비를 물어주게 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혼례가 허례허식 투성이라는 데 다들 동조하는 데도 개선되긴커녕 심해지는 건 ‘한번 뿐인데 남만큼은 해야 한다’는 생각 탓이다. 부모와 자식 모두 ‘기왕 하는 것 조금만 더’ 하다 여기저기 피멍이 든다. 혼수와 예식을 소박하게 하면 부담이 덜할 테고, 부담이 적으면 상대에 대한 실망도 줄어들 것이다. 축의금을 덜 받으면 나중에 덜 찾아다녀도 될 게 틀림없다. 은퇴자 83.4%가 경조사비 때문에 힘들다고 답했다는 조사도 있다.

부러워해야 할 건 첼시의 화려한 결혼식이 아니라 저커버그와 챈의 자신감과 당당함이다. 부모가 힘들여 장만해주는 호화 혼수와 번듯한 결혼식이 앞날의 행복과 상대의 사랑을 약속하진 않는다. “남이 하니까”에서 이제 그만 벗어날 때도 됐다.

박성희 논설위원·한경아카데미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