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조차 안했는데 유해를 찾다니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62년 만에 유해로 돌아온 이갑수·김용수 일병의 유족들은 25일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네 살 때 아버지 이 일병과 헤어진 아들 이영찬 씨(66)는 기자와 만나 “아버지라고 불러본 적이 없어서 아버지 이름도 잊을 정도였다”며 “아버지가 북한에서 전사한 걸로 알고 있어서 (돌아올 것으로) 기대를 안했다. 통일되면 찾아볼까 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전사통지서에 00지구에서 00일 전사라고 기록돼 제사도 못 지내고 있었다”며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일곱 살 때 이별한 이 일병의 딸 이숙자 씨(69)는 “할머니가 ‘오늘밤은 불안하니 집에서 자지말라’고 했는데 새벽에 아버지가 징집된 게 어렴풋하게 기억난다”며 “군인 트럭이 많이 지나가고 손을 흔들었는데 그 사이에 아버지가 있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그는 “아버지는 나를 업고 진흙탕길을 걸어 학교에 등교시켰다”며 “나를 굉장히 귀여워해준 것 이외에는 뚜렷하게 생각나는 게 없다”고 말했다.

김 일병의 큰 조카인 김해승 씨(54)는 “기적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며 “2년 전에 우리 아버지의 DNA(유전자)를 채취해갔는데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포기했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김 일병)가 함께 입대를 했다. 아버지가 후방으로 같이 가자고 했더니 작은아버지가 ‘형님은 내려가 집을 지켜라. 나는 국가를 지키겠다’고 한 얘기를 들었다”며 눈물을 훔쳤다.

김 일병의 부친은 일제 강점기에 항일운동가로 활동한 김인주 선생(1892~1944)이다. 김 선생은 기독교인이자 항일운동가로서 교인들과 함께 독립기도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체포돼 갖은 고문을 받고 옥사했다. 정부는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한 바 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