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은 건설업계의 ‘맏형’으로 통한다. 토목, 플랜트, 건축, 주택 등 건설 전 분야에서 65년간 업계를 선도하고 있어서다. 남들이 꿈조차 꾸지 않던 프로젝트나 국가에 먼저 진출해 ‘하면 된다’는 것을 입증했다. 건설산업 전 분야에서 한발 앞서 선진 기술력을 확보해 건설산업 선진화를 이끌었다. 현대건설에 ‘최초’ ‘최고’라는 수식어가 여럿 붙는 이유다. 대형 건설회사의 한 임원은 “현대건설이 건설 모든 분야에서 90점이라면 다른 건설사들은 특정 분야에서 90점을 받고 있다고 보면 정확하다”며 “그동안 현대건설이 해온 맏형 역할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목 한류’의 주역

현대건설은 토목에 강한 건설회사다. 1965년 일찌감치 해외 건설시장에 진출해 경험과 기술을 축적한 덕분이다. 현대건설 창업자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은 당시 국내 건설경기가 침체하자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첫 해외 공사는 태국의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였다. 최신 장비 사용법을 몰랐던 데다 경험도 없어 적자를 봤지만, 이 공사는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었다. 태국에서 배운 최신 장비 사용법과 선진 공법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활용됐다. 베트남 건설 특수와 중동 건설 붐을 타고 메이저 건설사로 도약하는 바탕이 됐다.

그동안 수행한 토목 프로젝트 중에는 건설 역사에 남을 만한 것이 많다. 1976년 시공한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는 ‘20세기의 대역사(大役事)’로 불린다. 공사 규모가 단일 공사로는 역대 최대인 9억6000만달러(1조1251억원)였다. 당시 우리나라 국가 예산의 절반에 이르는 대공사였다. 현대건설은 구조물을 국내에서 조립해 현지로 수송하는 창의적인 방식을 채택했다. 이를 통해 공기를 획기적으로 단축시켜 토목사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85년 완공한 말레이시아 페낭대교는 현대건설의 교량 건설 기술력을 잘 보여준다. 총 연장 7958m, 폭 19.5m(4차로) 교량인 페낭대교는 당시 동양에서 첫 번째,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교량이었다.

현대건설은 최근 들어 부가가치가 높은 토목공사를 주로 수주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시행 중인 주롱 유류비축기지 공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바다 100m 밑에 석유를 비축하는 동굴기지를 만드는 공사로, 첨단장비와 기술 없이는 불가능하다.

○고부가 플랜트시장 개척

현대건설은 최근 부가가치가 높은 플랜트 시장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2005년 4월 초대형 플랜트 공사인 이란 남부 ‘사우스파 가스처리시설 4, 5단계 공사’를 사상 최단 기간인 35개월 만에 완공했다. 5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과 90% 이상의 체감습도 속에서 철야 근무를 하며 땀흘린 결과다.

작년 완공한 카타르 라스라판 산업단지의 ‘천연 가스 액화정제시설(GTL) 공사’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GTL은 바다 속에서 채굴한 천연가스를 초저유황경유 등 액체 상태의 에너지원으로 만드는 고부가 플랜트 공정이다. 기술장벽이 높아 그동안 일본과 유럽의 일부 업체가 독점으로 공사를 수행해 왔다. 현대건설은 국내 건설사 중 처음으로 이 공사를 성공시키면서 단순 시공업체에서 벗어났음을 입증했다. 현대건설은 플랜트 분야에서 시공 부문을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일본, 유럽 건설업체와 달리 설계·구매·시공(EPC)을 통합적으로 수행해 차별화한 경쟁력을 선보였다.

○세계적인 원자력발전소 기술력

현대건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건설 기술력을 자랑한다. 국내에서 운영 중인 21기의 원전 중 13기를 시공했다. 또 현재 건설 중인 국내 원전 7기 가운데 5기의 시공 대표사로 참여하고 있다. 2009년에는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1~4호기를 수주, 사상 처음으로 해외 시장에도 진출했다.

건축 분야에서도 세계적 수준의 시공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극한지(極寒地) 공사에서 차별화한 기술력을 확보했다. 1988년 세종과학기지를 완공한 데 이어 제2 남극과학기지인 장보고기지를 짓고 있다. 영하 40도의 극한 기온과 초속 65m의 강풍 속에서 진행하는 난공사다.

2010년 베트남 호찌민 중심가에 완공한 68층짜리 ‘파이낸셜센터’ 빌딩은 베트남 남부지역에서 가장 높은 랜드마크다. 28층까지는 볼록한 모양으로 올라가다 점점 좁아지는 독특한 외관이 눈길을 끈다. 38층부터 50층까지는 꼬인 형태이고, 50층에는 23m 정도 건물 밖으로 튀어나온 헬기장이 있다.

이 밖에 싱가포르 선텍시티·마리나센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서초동 대법원 청사, 삼성동 아셈타워, 경기 고양 킨텍스, 부산 벡스코 등 수많은 랜드마크 건축물을 국내외에서 시공했다.

○현대자동차그룹 가족회사로 새출발

현대건설이 지난 65년 동안 순탄한 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위기는 1998년 말 외환위기 때 찾아왔다. 이라크 미수금, 유동성 부족 등의 영향으로 2001년부터 채권은행의 관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한때 시공능력 평가 1위 자리를 빼앗기는 등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우수한 인적자원,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 다양한 사업 수행 경험, 발주처와의 신뢰관계 등 장점을 발판 삼아 2006년 경영 정상화를 이뤘다. 작년에는 현대자동차그룹 품에 안겼다. 미국 건설 전문지 ENR이 평가한 순위는 세계 23위다.

현대차그룹 편입은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전망이다. 기술 인력 조직 등에 대해 공격적인 투자가 가능해진 덕분이다. 자동차, 철강 부문과 새로운 사업 기회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건설의 목표는 2020년까지 세계 10대 건설사에 진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해외 시장 및 공종 다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은 “시공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기본설계(엔지니어링) 기술은 선진국 업체의 80% 수준에 그친다”며 “엔지니어링 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느냐가 목표 달성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