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1996년 일이다. 상호신용금고(현 저축은행)를 맡았던 기자는 아침이면 신용금고연합회(현 저축은행중앙회)로 출근했다. 236개에 달했던 신용금고의 동향을 효율적으로 체크하려면 연합회에 들르는 게 최선이었다. 연합회에서 나오면 한국은행의 은행감독원 검사5국장실을 찾았다. 은감원 검사5국은 신용금고의 검사를 담당하는 곳이었다. 검사5국장이 어떤 신용금고에서 불법이나 탈법행위가 있었다고 브리핑해주면 이를 기초로 기사를 작성했다. 큰 문제가 없다고 하면 신용관리기금으로 발길을 돌렸다. 마찬가지로 신용금고 검사기관이었던 신용관리기금에서 위법대출 등을 적발했다고 전해주면 그날 기삿거리는 해결됐다.

15년 전엔 검사 경쟁

은감원 검사5국과 신용관리기금의 역할은 명목상으론 조금 달랐다. 은감원 검사5국이 일반검사 위주였던 데 비해 신용관리기금은 특별검사 중심이었다. 하지만 두 기관은 명목을 따지지 않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작은 이상 징후라도 보이면 검사를 통해 위험을 지적했다. 누가 먼저 적발해 내느냐가 중요했다. 그 결과 당시 신용금고는 작은 문제는 여럿 일으켰지만,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았다. 숫자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1989년 말 237개였던 신용금고는 1996년 말 236개로 단 한 개 줄었으며, 1997년 한 해엔 5개 감소했다. 퇴출될 만큼 부실해진 신용금고가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1998년부터 큰 변화가 생겼다. 금융회사를 검사하는 기관들이 통·폐합됐다. 은감원, 보험감독원, 증권감독원, 신용관리기금이 모두 금융감독원으로 합쳐졌다. 은감원 검사5국과 신용관리기금의 검사역들은 옆자리에 앉게 됐다. 경쟁과 견제의 관계는 협력 관계로 바뀌었다. 경쟁이 사라지니 검사의 강도도 약해졌다.

때마침 외환위기 여파로 신용금고에 여러가지 혜택이 주어졌다. 규제 완화라는 명분에서였다. 예금보험 한도 확대, 저축은행으로의 명칭 변경, 저축은행 간 인수·합병(M&A) 때 지점 신설 허용 등이다.

대선주자들, 개편안 내놔야

저축은행은 검사 약화와 혜택 확대에 따라 급속히 부실화됐고, 대형 사고를 쳤다. 이용호 게이트, 정현준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지난해부턴 부산, 제일, 토마토, 솔로몬, 한국 등 큰 저축은행들이 모조리 쓰러졌다. 부당 대출 규모는 적게는 수백억원이고 많게는 수조원에 이른다. 이런 사고들을 처리하는 데 들어간 돈(넓게 보면 국민 세금)이 15조원을 넘는다. 지금 정상영업 중인 저축은행은 80여개에 불과하다.

지금의 금융감독 체계는 1997년 말 기틀이 갖춰졌다. 한국은행이 독립적으로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대신 금융감독은 여러 기구를 합쳐 정부가 한손에 틀어쥐는 구조다. 15년 전에 만들어진 통합 금융감독체계는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 이후 이슈가 됐으며, 지난해 저축은행 사태 이후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정권 말기에 금융감독 체계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새 정부가 힘이 있을 때 예금자와 금융소비자 보호 관점에서 밀어붙여야 개편 작업이 진행될 수 있다.

이제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를 본격화할 때가 됐다. 선두엔 대선 주자들이 서야 할 것이다. 대선 후보들은 정책 중 하나로 금융감독체계를 어떻게 가져가는 게 좋을지 제시해야 한다. 그 중심엔 검사에서의 경쟁 체제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박준동 금융부 차장 jdpower@hankyung.com